[김정호 칼럼] 조선 구조조정 회의, 대통령이 주재하자
정치인들이 대우조선해양 조선소를 앞다퉈 방문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진앙이다. 사공이 많아져 배가 또 산으로 올라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하지만 대규모 실업과 지역경제 침체가 예상되는 만큼 정치권만 나무랄 것도 아닌 것 같다. 정작 걱정스러운 건 야당을 통해 확인한 정부의 안이한 현실 인식이다.

현장에서 “2018년이면 조선산업이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이다. 경제학자도 정치인이 되면 포퓰리스트가 되나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더민주에 그렇게 보고했고 최 부의장은 그 말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한다. 더민주는 그렇다면 굳이 인력을 줄일 필요가 있겠느냐, 노사가 임금만 조정하는 선에서 협의하는 게 좋겠다는 훈수를 두고 돌아갔다고 한다.

조선산업이 2018년이면 위기를 벗을 수 있을까. 환경규제가 강화되면 발주가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 우리 수주도 늘어날 것이라는 게 산업부 주장이다. 조선산업 위기의 본질은 경기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라는 데 더 이상 이견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무부처가 꿈속을 헤매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 진행된 조선산업 구조조정 논의에 주무부처가 한 일은 없다. 산업부는 조선산업이 해양플랜트와 고부가 선박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고 10만명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하지만 공급 과잉 속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하는 상황이 거듭됐고 고부가 사업은 기술 부족으로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결국 9사 가운데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을 제외한 7개 조선소가 채권단 관리에 놓였다. STX조선은 어제 법정관리 결정이 났다. 금융권에는 조선업 여신에 80조원의 ‘충당금 폭탄’이 터질 것이라는 경고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그런데도 2018년 타령이다.

이뿐인가. 산업부는 통상 마찰을 핑계 삼아 구조조정은 채권단과 해당 기업 자율에 맡긴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강조한다. 대체 어디에 필요한 부처인지.

해당 기업과 채권단이 알아서 진행한 구조조정 결과가 대우조선이다. 이 회사가 16년간 산업은행 자회사로 머물면서 삼킨 혈세가 6조5000억원이다. 그런데도 근로자 평균 연봉은 7500만원이고 최고경영자는 퇴직금을 포함해 20여억원의 거액을 챙겼다.

정부는 얼개를 짜고, 채권단은 돈을 대고, 구조조정은 민간 전문가들이 맡는 게 구조조정이다. 정부와 채권단에 전문가가 있을 턱이 없다. 미국은 GM 구조조정 때 월스트리트 출신을 팀장으로 내세워 14명의 민간 전문가들과 호흡을 맞추도록 했다. 신속한 구조조정 비결이다. 일본도 대학 교수 팀장에 15명의 민간 전문가로 조선산업경쟁력전략회의를 꾸렸다. 조선사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물론 정부가 틀을 잘 짜줘야 한다.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30년 공직 생활에서 가장 안타까운 건 대우조선 구조조정에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인데 정부 안에 매각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모두가 헐값 매각이나 특혜 시비에 휘둘릴까 걱정했다고 말이다.

장관도 총대를 멜 수 없는 구조다. 대통령이 나서 큰 틀을 결정해주지 않는 한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 미국은 GM의 구조조정 초기 회의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파산보호 신청 때는 생중계 연설까지 했다.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에서 큰 틀을 짜자 채권단과 민간 전문가들은 일사천리로 구조조정 작업에 나섰다.

우리도 대통령이 직접 조선과 해운산업 구조조정 회의를 주재해보자. 해당 기업과 산업계 당사자들은 물론이다. 정부와 유관 기관, 채권단도 다 참석하자. 야당도 빠지면 안 된다. 끝장 토론이다. 그리고 구조조정에 스피드를 내보자.

조선과 해운이 끝이 아니다. 철강 화학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상장사 세 곳 중 한 곳이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실정이다.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지휘자가 있어야 구조조정이 된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