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大選과 시험대에 오른 통상외교

[뉴스의 맥] 자국 이익 내세운 트럼프 신고립주의, 무역질서 흔든다
세계 경제가 미국 대선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대선 후 미국은 국내 경제위기 극복의 필요성과 공정무역 패러다임에 입각해 전 세계 통상관계를 재조명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 모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비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TPP 발효는 당분간 힘들 것이다. TPP의 좌초가 미국과 함께 TPP를 주도한 일본 경제에는 악재지만, TPP 협상에 빠진 한국 경제에는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은 단견이다. 높은 수준의 규제개혁을 추구하는 TPP와 같은 메가자유무역협정(FTA)은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뉴스의 맥] 자국 이익 내세운 트럼프 신고립주의, 무역질서 흔든다
세계 경제가 침체하고 세계무역기구(WTO)를 비롯한 다자무역주의가 급격히 쇠퇴하고 있는 시대엔 그렇다. TPP는 회원국들에만 교역 자유화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다. 비회원국에도 도미노 효과를 불러일으켜, 높은 수준의 개방과 규제 철폐를 통해 광역 단위 경제 통합을 가속화하도록 유인을 제공한다. 실제로 TPP로 인해 한·중·일 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등 여타 메가FTA 협상이 활기를 띠고 있는데, 앞으로 TPP가 좌초하면 이런 유인 효과가 반감된다. TPP의 실패는 대외무역 의존도가 90%에 육박하는 우리 경제에 장기적으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두 후보는 한·미 FTA에도 부정적이다. 그러나 클린턴은 이미 발효된 협정을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클린턴은 2008년 오바마 대통령과 대선주자 경선을 할 때 한·미 FTA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가,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에 취임하면서 태도를 바꿔 최우선 순위로 비준을 추진한 바 있다. 반면, 트럼프는 사정이 다르다. 트럼프는 이미 중국, 멕시코 등 주요 교역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최고 45%의 관세를 부과하고, 모든 국가의 수입품에 20%의 관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한다는 극단적 보호주의 정책을 공언하고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경제 제재는 중국 시장에 중간재를 수출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가해진다.

TPP 실패는 韓경제에도 부담

트럼프가 당선되면 이런 극단적인 조치를 실제로 취하지는 않더라도 대미 교역 흑자국들에 전방위적 압력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 대미 무역에서 최대 흑자(259억달러)를 기록한 한국도 주요 타깃이 될 것이다. 적어도 트럼프 정부는 한·미 FTA 개정을 요구해올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최대 수출상품인 자동차에 대해 (일정 기간 또는 영구적으로) FTA 특혜관세를 폐지해 원상 복귀하고,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자동차 관련 배기가스·온실가스 규제 등 새로운 환경 규제로부터 미국산 자동차를 면제해줄 것을 요구해올 것이다.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의 교역을 수출입 자율규제 형태로 막고 있는 양국 간 잠정적 체제도 더 이상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한·미 통상외교는 FTA 체결 이전 상황으로 회귀해 새로운 제도적 균형을 찾아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되는 셈이다.

중국이 트럼프 정부의 압력에 반발해 미·중 간 관세 보복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 근린궁핍화(beggar-thy-neighbor) 식으로 다른 나라의 희생 아래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정책이 세계적으로 무한 확산될지도 모른다. 1929년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져 미국 정부가 2만여개의 수입품에 평균 59%에 달하는 스무트-홀리 관세(Smoot-Hawley tariff)를 부과하자, 세계 각국이 보복관세로 대응하면서 세계 대공황이 심화한 전례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미국이 글로벌 무역시장의 규칙을 깼을 때 글로벌 파국이 도래한다.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1920년대와는 다른 현재의 국제법과 분쟁해결 체제의 지혜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현행 국제법 체제 아래에서 미국 정부가 트럼프가 공언하듯이 WTO에서 양허한 관세율 이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합법적 방법은 WTO 양허표 수정절차를 밟는 길밖에는 없다. 해당 품목의 주요 교역국 및 원래 관세양허 협상국으로부터 양허관세 증액을 승인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 국가가 요구하는 여타 품목에 대한 관세를 미국이 내려줘 평균 관세 수준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韓·美FTA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미국이 승인을 받아내지 못하더라도 일방적으로 관세를 증액할 수는 있다. 그럴 경우 상대국들도 6개월 후부터 그에 상응하는 액수만큼 보복 관세를 부과할 권리가 발생한다. 우리는 대부분 상품 교역에서 미국의 주요 교역국이다. 미국과의 양허표 수정 협상 및 대미 무역 보복 국면에 대비해야 한다.

한·미 FTA는 양측이 문서로 합의해야 개정할 수 있으나, 일방이 협정을 종료할 것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180일 이후에 FTA 효력이 사라진다.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트럼프 정부의 협정 개정 요구를 면밀히 검토해 이슈별로 수용 가능 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우리 측도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

이 기회에 FTA 투자 분야에서 공공 규제의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해 간접 수용 개념을 명확히 하고, 일반적 예외 사유를 확보해야 한다. 금융세이프가드도 그 발동 요건을 완화해 금융위기 때 실질적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준비작업을 면밀히 진행하고 관계부처와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정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통상법률 체제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주변국과 공조, 논리적 설득해야

트럼프 진영에 대한 정보 수집 노력을 기울임은 물론 미국 내의 자유무역주의 진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로비 활동도 준비해야 한다. 미국 신문 기고 등을 통해 극단적 보호주의가 결국 미국 경제 자체의 몰락을 가져옴을 미국민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해 나가야 한다. 이런 활동을 주변 국가들과의 공조체제 속에서 수행할 준비도 갖춰야 한다. 미국의 고립주의 속에서 전 방위 통상외교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에 진정한 통상대국의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최원목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