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유럽의 병자'서 고용 기적 이룬 독일 노동개혁
‘도대체 무슨 일인가? 우리는 용기를 잃고 있으며 행운의 여신은 독일을 떠나고 있는 것 같다. 경기는 침체하고 안 좋은 소식은 늘어만 가고 있다. 많은 기업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으며 실업률은 위태로울 정도로 올라가고 있다.’

이 구절에서 독일만 빼면 마치 요즘의 한국 경제를 우려하면서 쓴 글이란 착각이 든다. 이 구절은 독일 이포(Ifo)연구소 소장인 한스 베르너 진 뮌헨대 교수가 2004년 펴낸 《독일경제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의 저자서문 맨 앞 문장이다.

독일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경제의 성장엔진으로 경제성장률, 실업률 등 모든 면에서 유럽을 선도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통일특수가 사라진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성장률, 실업률 등 거시경제지표가 모두 나빠졌다.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이던 노동생산성도 점차 약화됐으며 실업률은 2000년대 초반 무렵 두 자릿수까지 상승해 독일 경제의 최대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당시 경제전문가들은 저성장, 생산성 정체, 가계부채 확대, 부실기업 증가 등 독일 경제 상황이 90년대 초 장기불황에 진입하기 직전의 일본과 비슷하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독일을 ‘유럽의 병자’라고 한 것은 당연한 비유였을 것이다.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경제구조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슈뢰더라는 탁월한 정치인이 나서서 2003년에 개혁안을 내놨고 뒤이은 메르켈이 이를 현실화했다. 그 개혁안이 ‘아젠다 2010’이다. 개혁안의 골자는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를 쉽게 만들 수 있도록 하고 노동 유연성을 높여 노동비용 상승을 억제하며 최저생계비 이하의 근로자에게는 실업부조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슈뢰더 개혁이 있은 지 10년이 더 지난 지금의 독일은 어떤가. 해마다 2000억유로가 넘는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유럽연합(EU) 전체 흑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실업률이 완전고용에 가까운 4%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독일을 병자 취급하던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두 자릿수 실업률에 허덕이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독일의 이 같은 경제실적을 유로화 도입으로 인해 실력 이상으로 저평가된 환율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이를 온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독일이 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며 임금을 낮게 유지해 경쟁국과의 상대적 경쟁력을 높였다는 점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임금을 생산성으로 나눈 단위노동비용의 경우 독일은 2005년을 100으로 했을 때 2001년은 100.9였으나 2007년 96.1을 기록할 때까지 지속적인 하락세를 나타냈다. 이 기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다른 유로존 국가들의 단위노동비용은 일제히 상승세를 보였다. 이런 노동시장의 개혁을 두고 독일인들은 2차대전 후의 경제기적에 비견해 ‘고용기적’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 경제가 어렵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글로벌 경기침체 등 대외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기업투자가 위축되고 신규 고용이 부진해 체감경기가 예사롭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독일식 개혁처방을 참고할 만하다. 과감한 구조개혁과 함께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국민이 구조개혁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왜 ‘잃어버린 20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는가” 하는 질문에 가장 충격적인 답변은 “그렇게 오래갈 줄도, 그렇게 고통스러울 줄도 몰랐다”는 것이란 어느 일간지의 보도를 봤다. 한국도 현재의 어려움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른 채 그냥 나아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그래도 독일의 2004년처럼 확 달라진 10년 뒤를 기대하는 것이 과대망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강성윤 <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