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2011년 4월12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신라호텔 한복사건’이 터진 직후였다. 호텔 뷔페에 입장하던 한복 전문가를 직원이 제지한 게 발단이었다. 분노한 한복 전문가는 트위터에 사건을 공개했다. 여론이 들끓었다. 호텔 측이 사과했지만 진정되지 않았다. 이튿날 미래전략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제가 직접 해결하겠습니다.”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이었다. 그는 곧장 피해자를 찾아가 사과했다. 한복 전문가는 만남 직후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개인적으로 신라호텔을 용서했다.” 여론은 잠잠해졌다.

데블스 애드버킷의 부재

4·13 총선 개표 결과를 보던 중 문득 한복 사건을 떠올렸다. 위기관리 측면에서 새누리당이 보여준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위기관리의 모든 기본 원칙을 저버렸다고 할 만하다. 우선 “피해자를 관리하라”는 첫 번째 명제를 거부했다. 공천 파동의 첫 번째 피해자는 두말할 것 없이 국민, 특히 여당 지지자들이었다. 말로는 경제 회복을 외치며, 추악한 정파 싸움을 벌이는 여당을 보며 그들은 분노했다. 지지자들의 마음은 멀어져 갔고, 피해자들은 표로 심판했다.

‘데블스 애드버킷(악마의 변호인)’도 없었다. 주류의 반대편에 서서 정책을 반박하는 자를 말한다. 요즘은 기업들이 도입하는 ‘레드팀’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 여권은 이 역할을 하는 사람을 대부분 내보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그들이다. ‘노(No)라고 말할 수 없는 조직문화’가 가져온 수많은 위기 사례를 망각했다. 위기관리 책임자가 누구냐는 질문에도 여당은 답하지 못했다. 기업에서는 최고경영자(CEO)이고, 당에서는 대표다. 이 사장은 위기관리 CEO 역할을 다하며 상황을 수습했다. 반면 여당 대표는 옥새를 가지고 사라져 분란을 키웠다. 지지율이 추락하는 징후도 무시했고, 내부 시각이 아닌 외부 시각으로 봐야 하는 ‘아웃사이드 인’ 원칙 등도 무시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나의 방식으로 싸워라

야당으로 가보자. 국민의당은 “적의 방식이 아닌 나의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줬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청년들과의 공감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정치권에 진입했다. 등장하자마자 대통령 후보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곧 나락으로 떨어졌다. 원인은 단일화를 위한 후보 사퇴, 야당 입당 등이었다. 기존 정치권의 행태를 그대로 따라 했다. 신선함은 사라졌고 국민들은 고개를 돌렸다. 이번 선거에선 달랐다. 많은 논란에도 그는 제3당 대표가 돼 나락을 빠져나왔다. 자신의 방식으로 정치를 한 그를 국민들은 다시 밀어올렸다.

한 선거 전문가는 이번 선거를 “국민들이 여당을 심판하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탄핵했다”고 평했다. 전국구 득표에서 더민주가 국민의당에 밀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변곡점이 된 것은 비례대표 파동이었다. 김종인 대표의 ‘셀프 공천’ 논란 뒤 지지율은 떨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내는 조직 중 하나인 미국 해병대에는 원칙이 있다. 밥을 먹을 때 항상 하급자부터 먹는다. 배급이 끊겨도 하급자는 먹을 수 있다. 조직이 자신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하급자는 조직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한다. 김 대표는 아마도 이 원칙을 알지 못한 듯하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김용준 생활경제부 차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