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대부' 이민화 특별기고 "호창성 사태 불똥…창업 붐 꺼질까 걱정"
‘벤처 성공신화’를 써오던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의 구속 파장이 벤처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호 대표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서 수십억원의 정부 보조금을 편취한 혐의로 구속되자 봄바람이 불던 벤처업계가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

이번 사태는 2000년대 초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등 잇단 ‘벤처 게이트’로 벤처업계 신뢰가 순식간에 땅에 떨어지고 달아오르던 벤처 붐이 꽁꽁 얼어붙었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벤처 사냥꾼’에 의한 비리 종합세트가 들춰지면서 해외 각국이 벤치마킹하던 대한민국의 벤처 육성정책은 한순간에 완전 중단됐다.

지난 10년간 국내 벤처업계는 빙하기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구글, 페이스북 등 혁신적 벤처기업이 나와 산업의 주축으로 성장했지만 한국에선 창업의 싹조차 틔우지 못했다. 젊은이들은 창업을 외면했고 한국은 ‘창업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호 대표가 정부 지원금을 받아주는 명목으로 스타트업 다섯 곳의 지분을 무상으로 받아 챙겼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정부의 ‘민간 주도 창업지원사업(팁스·TIPS)’이다.

창업보육기관이 스타트업에 1억원을 투자하면 정부출연금과 민간부담금 등을 합쳐 최대 9억원을 투자할 수 있다.

팁스는 중소기업청이 이스라엘의 벤처보육제도를 본떠 도입한 정책이다. 기존 창업보육정책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이스라엘처럼 창업보육기관에 인센티브를 주고 스타트업 투자의 의사결정권을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 이양한 것이다.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를 주저하는 벤처투자사를 끌어들이기 위해 정부가 꺼낸 파격적인 정책이다.

한국의 창조경제는 창업 활성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업 활성화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성공 이후 재창업 혹은 창업 지원에 나서는 ‘연속 기업가(serial entrepreneur)’의 확산에 달려 있다. 정부가 자칫 특혜 논란 등을 일으킬 수도 있는 팁스(TIPS) 제도를 도입한 배경이다.

창업 팀은 투자금, 정부 지원금과 더불어 성공한 창업가의 멘토링까지 받게 되니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넘길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투자사는 창업 팀이 성공하면 더 큰 자금 회수 기회를 갖게 되고 정부는 스타트업을 통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 및 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팁스는 벤처 지원 정책 가운데 가장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팁스가 성과를 내면서 불과 3년 만에 한국 벤처 생태계가 2000년 초반 수준으로 복원됐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화두로 내세우면서 사그라들기 직전이던 벤처 창업 불씨를 가까스로 살려낸 것이다. 창업자 연대보증을 폐지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허용하는 등 청년 창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쏟아냈다. 각종 벤처 지원책에 힘입어 작년 벤처기업 수가 3만개를 넘어서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냈다.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트업은 대부분 팁스와 관련을 맺고 있다. 획일적인 지원을 받는 기존 창업보육센터와 달리 팁스는 창업에 성공한 벤처인들이 운영하는 액셀러레이터를 통해 멘토링과 글로벌화 등을 지원한다.

이번 사태로 우려되는 것은 성공한 벤처인들이 더 이상 후배 양성을 위해 뛰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후배 창업가들에게 성공 경험을 전수하며 제2, 3의 벤처 성공신화를 일구려 하는 벤처 1세대의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2000년 세계 최고의 벤처 생태계를 구축했다. 세계 최초로 벤처특별법과 기술거래소, 실험실 창업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수많은 벤처기업을 육성했고 이스라엘 등에는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그렇지만 잇따른 벤처 게이트로 잃어버린 10년을 보내야 했다.

이번 사태가 과거처럼 벤처업계 게이트로 확산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지난 3년간의 피나는 노력 끝에 비로소 벤처 창업의 불씨를 다시 살려낸 창조경제의 성과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벤처기업협회 벤처캐피탈협회 여성벤처협회 등 벤처업계가 11일 한마음으로 이번 사태가 벤처 투자 붐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는 성명서를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민화 <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