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알파고의 교훈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첫 번째 대국이 열린 지난 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이관섭 1차관 주재로 산·학·연 전문가들을 모아 ‘인공지능 응용·산업화 간담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당초 계획에 없던 행사였다. 간담회가 열린 지난 14일엔 내년 인공지능(AI)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최소 100억원 증액한다고 발표했다.

AI 관련 원천기술을 담당하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도 서둘러 각종 대책을 내놓았다. 미래부는 AI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예산 3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고, 최근엔 ‘인공지능 전담팀’도 만들었다. 국토교통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율자동차 연구개발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카드뉴스를 배포했다.

각 부처 간 AI 관련 정책을 나눠서 갖고 있다 보니 불협화음도 불거졌다. 자율주행차의 경우 센서 등 원천기술은 미래부, 응용기술은 산업부, 도로 확충 등 인프라시설은 국토부가 담당한다. 각 부처는 앞다퉈 AI 관련 대책을 제시하면서도 다른 부처의 눈치를 보느라 분주했다. 다른 부처의 분위기를 기자들에게 묻기도 했다. 이런 문제가 지적되자 정부는 ‘AI 컨트롤타워’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일반인들의 반응은 전반적으로 시큰둥했다. ‘이럴 줄 알았다’는 의견이 주류였다.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마자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정부, 한국형 알파고 개발 착수→미래부 산하에 한국형 인공지능연구센터 개소→연구센터에 정치권 낙하산 원장 취임→싸이, 한국형 인공지능 홍보대사에 선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다. 물론 지나치게 냉소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 부처가 경쟁적으로 내놓은 정책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인터넷 유머사이트의 글을 마냥 무시하기엔 어딘가 찜찜하다.

정부의 행보에 대해 기업과 과학기술계의 반응도 긍정적이지 않다. “정부가 업계 간담회를 하거나 연구소를 세우지 말고 구글 같은 회사가 클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대학에 연구를 지원해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더 많았다. 알파고를 만든 건 미국 정부가 아닌 구글이다.

김재후 경제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