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엊그제 심야에 78개 법안을 무더기로 처리했다. 총 3시간20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각기 독립적인 개별 법안 하나를 처리하는 데 불과 2분33초씩 소요된 셈이다.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는 북한의 도발에도 한사코 테러방지법을 막겠다며 그 많은 시간을 세계 신기록인 필리버스터로 다 날리더니 날림 법안처리로도 세계 신기록일 것이다.

한밤중에 붕어빵 찍어내듯 법안을 만들다 보니 온갖 희한한 법까지 다 본회의를 통과해버렸다. 지방자치단체의 방만 부실한 경전철 적자를 국고로 메워주는 법(도시철도법)도 끼어 있었다. 개인정보 침해논란이 가시지 않은 ‘상장회사의 미등기 임원도 개인별 연봉과 함께 산정기준까지 공시토록 하는 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같은 설익은 기업활동 규제 법도 포함됐다. 항공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한다는 ‘마일리지 적립 기준과 사용 기준 공개법’(항공법)도 묻지마 무더기 통과 목록에 들어있다. 이 78개 법안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것이다. 모두가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다른 법안을 흥정하면서 끼워 팔고, 한꺼번에 묶어서 떨이로 파는 좌판 장사는 더구나 아니어야 한다. 그러면서 노동법, 서비스법은 모두 빠졌다. 19대 국회가 사실상의 마지막 본회의에서까지 온갖 추한 모습은 다 보여준 것이다.

긴 방학을 끝내는 마지막 밤 불량 학생의 엉터리 숙제처럼 여의도에서 2~3분마다 방망이를 두들겨댈 때 UN은 대북 제재안을 결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애초 북핵 대응도, 안보도, 경제 현실에도 관심이 없다. 그러면서 필리버스터라는 민주주의 장치에 올라타 온갖 정치놀이는 다 즐겨본 꼴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무더기로 방망이를 두들겨댔다. 그렇게 규제 법안들이 태어난다. 그리고 그들은 지역구로 달려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