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개성공단 폐쇄, 이제 시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개성공단의 전면 중단을 선언하자 북한은 입주 기업의 모든 자산을 몰수했다. 이 사태에서 보듯 개성공단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공단이었다. 이번에 큰 재난 없이 공단 폐쇄를 이룬 것은 요행(僥倖)으로 정부, 기업 모두에 다시는 이런 무모한 짓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최근 조선신보와 우리민족끼리는 ‘개성공단 중단으로 남쪽 피해가 더 크다’ ‘사실상 북이 퍼주기를 했다’는 등의 기사를 연이어 내고 있다. 그간 좌파 언론과 친북 인터넷사이트에서 주장하는 바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예컨대 남한의 10분의 1 수준의 노임으로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해 오히려 북이 특혜를 준 셈이다. 북한의 피해는 연 급여 1억달러에 불과하지만 남한은 6억달러 이상의 생산액과 입주 기업 124개, 5000여개의 관련 기업이 입은 피해액이 연 6조원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물론 터무니없는 것이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은 북한 노동자의 초저임금에 맞는 저생산성의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800여명의 남측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이 역할도 국가가 거대한 리스크와 공단비용을 치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정부는 남북경협기금으로 시설투자보험을 대주며, 공단과 개성시에 물과 전기를 공짜로 대주고, 지금처럼 기업의 물자·시설이 몰수되면 대신 보상해준다. 남측 직원이 혹시 인질로 남을 경우 치러야 할 국가적·사회적 비용은 헤아릴 길도 없다. 국민이 이런 사실을 알아야 국가가 올바른 대북정책을 세울 수 있다.

개성공단은 이른바 ‘햇볕정책’의 산물이다. 북한에 대해 포용정책을 폄으로써 장래 상생의 남북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져온 정책이다. 그러나 오히려 북의 협박만 극대화시키는 역효과로 되돌아왔다. 지난 20년간 북한은 온갖 도발과 폭거를 계속했으며 우리는 그저 항의하고 며칠 못갈 엄포만 놓았을 뿐이다. 북측은 나날이 기고만장해졌고 남측은 불안과 수모를 안고 끌려다니기만 했다.

이런 남북관계는 2000여년 전 흉노에 수십 배 국력을 가지고서도 60년간 유린되던 한(漢)·흉노 관계를 닮았다. 흉노는 전쟁과 약탈로 살았다. 예의 약속을 무시하고 오직 이익만 탐하는 점도 북한 지도층을 닮았다. 흉노세력은 중원이 항우와 유방의 대결로 지쳐 있는 틈을 타 증대됐다. 이후 변경지역이 노상 유린당하자 한 효문제는 “풍요로운 물건들을 해마다 보낼 것이니 화목하자”고 흉노 선우(왕)에게 화친을 제안했다. 화친이 이뤄지자 효문제는 “앞으로 흉노는 요새 안을 넘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포고했다. 이렇게 화친이 이뤄지고 한·흉노 간 60년 평화시대가 열려 한나라는 공주와 곡식, 가축을 바쳤으나 2~3년 뒤면 흉노는 요새를 넘어와 마을을 불사르고 여인과 양식을 약탈했다. 그때마다 한나라는 더 많은 공물과 여자를 줘 흉노를 달랬다. ‘농경민족인 한은 약탈로만 살아온 흉노를 대적할 수 없다, 기나긴 국경을 옮겨가며 유린하는 흉노와는 전쟁보다 공물을 보내 평화를 사는 것이 이득’이라는 화평론이 한의 조정을 60년간 지배했다.

이 고리를 끊은 것이 한 무제다. 그는 “60년간 우리는 연전연패했다. 이제 우리가 주동(主動)한다. 그들이 들어오면 나도 나갈 수 있는 것이다”고 외치고 흉노 정벌을 선포했다. 온 국력을 기울이고 군사력을 동원해 사막과 초원에 깊숙이 들어가 흉노를 고비사막 이북으로 몰아냈다. 이때 국토에 편입된 하삭(河朔:황하 이북 지방)과 실크로드 통로인 하서회랑(河西回廊)은 훗날 중국의 부강을 이끌어내는 기반이 됐다.

올 들어 북의 핵 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위협이 연달아 터지자 드디어 박 대통령이 대북 포용정책과의 결별을 밝혔다. 과거 정권의 정치적 금기어였던 ‘체제 붕괴’라는 단어까지 동원해 북에 핵 개발 대가가 무엇인지도 경고했다. 이 새로운 ‘남한 주동 대북정책’이 유효하려면 그 언어만큼 강력한 결단력과 지구력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위정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 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