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 'CPND 생태계' 조성, 가상현실 주도권 잡는다
13세기 말 이탈리아의 수도원에서 처음 발명된 안경은 우리 세계를 어떻게 바꿨을까? 안경으로 시작된 렌즈기술의 발달은 세포의 관찰을 가능케 한 현미경의 발명으로 이어졌고, 생물학과 의학 발전의 토대가 됐다.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는 것을 가능케 한 망원경의 렌즈기술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다’는 그릇된 믿음을 바로잡기도 했다. 이제 실제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사용자의 시각이나 청각·촉각을 자극해 실제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가상현실(VR)이란 새로운 렌즈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영화에서나 등장하던 가상현실 기술이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한 게임쇼에서 미국의 오큘러스라는 기업이 게임과 연동한 ‘오큘러스 리프트’를 내놓으면서부터다. 불과 4년이 지난 2016년,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는 가상현실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삼성, LG, 애플,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이 ‘가상’의 공간으로 ‘현실’을 옮기는 가상현실에서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가상현실이 이토록 짧은 기간에 세계 굴지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새로운 각축장이 된 것은 가상현실이 교육, 의료, 국방,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등 기존산업과 재조합되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전 세계 기업이 이뤄내는 비즈니스의 조합을 생각해본다면, 그 가능성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말 그대로 무궁무진하다. 놀이공원에 가지 않아도 놀이기구를 타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고, 전쟁이나 재난 상황에 대비한 항공, 지상훈련도 가능할 것이다. 고도의 정확성이 요구되는 의료분야에서는 치료와 훈련에 가상현실을 접목할 수 있다. 교육, 여행, 미디어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연 10% 이상 성장하고 있고, 2020년 세계 시장규모가 15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상현실 분야는 아직 그 누구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초기 시장이다. 더욱이 가상현실은 디스플레이와 하드웨어, 기가급 5G 통신기술, 사물인터넷 등 연관 분야의 동반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로 선도적인 투자가 더욱 요구된다. 특정기술을 가진 사업자가 독점할 수 있는 시장도 아니다. 콘텐츠(C)와 플랫폼(P), 네트워크(N), 디바이스(D)가 결집해야 하며, 각개약진으로는 승산이 없다.

정부도 CPND가 협력하는 가상현실 선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가상현실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게임과 체험, 테마파크 등의 분야에서 대·중소기업 간 협력과 민간투자 활성화에 방점을 두고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그간 각개약진해온 콘텐츠, 소프트웨어, 디바이스 등 관련 기업들이 가상현실이라는 플랫폼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선도적으로 구축하고 세계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은 문화와 정보통신기술(ICT)이 교차하는 분야인 만큼 문화체육관광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협업을 통해 판교와 상암에 게임 신시장과 가상현실 생태계 조성을 함께 추진하고, 연구개발과 콘텐츠 신시장 창출도 공동 지원할 계획이다. 상암 누리꿈스퀘어에 대학과 기업이 참여하는 가상현실 전문인력 양성과정을 확대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창업가를 위한 창업공간도 별도로 지원할 계획이다. 창작자와 개발자가 가상현실 콘텐츠를 전시, 테스트하고 내외국인이 가상현실을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 중이다.

현미경이 발명되기 전에는 누구도 세포와 같은 생명의 기본단위가 존재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렌즈가 가져올 새로운 기회, 새로운 미래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새로운 렌즈로 보는 세상을 더욱 속도감 있게 준비해야 할 때다.

최재유 <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