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수소차 희비' 가른 한·일 정부지원
‘29대 vs 500대.’

한국과 일본에서 팔린 수소연료전지차(FCEV·이하 수소차) 대수다. 수소차는 수소와 공기 중의 산소를 직접 반응시켜 전기를 만들어내는 연료전지로 구동한다. 물 이외에는 어떤 배출가스도 나오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다.

현대자동차는 수소차 부문 선두주자다. 2013년 울산공장에 세계 최초로 투싼ix 수소차 양산 체제를 갖추고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작년 말 기준 29대만 등록돼 있다. 일본은 다르다. 도요타는 2014년 말 현대차에 이어 수소차 ‘미라이’를 내놓았다. 이 차는 작년에만 500여대가 팔렸다. 계약 대수가 3000대에 달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투싼ix 수소차의 글로벌 누적 판매량(1500대)을 뛰어넘는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원 정책이 이 같은 차이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일본 정부는 620만엔(약 6700만원)짜리 미라이를 구매할 때 대당 200만~300만엔(약 2100만~32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반면 한국 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구매하면 2700만원의 보조금을 주지만 일반 구매자에게는 지원금을 주지 않는다. 투싼ix 수소차 가격은 8500만원이다. 보조금 없이는 대중 보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소 충전소 보급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은 지난해 충전소 80곳을 지었다. 2025년까지 충전소를 10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한국은 현재 17곳의 수소 충전소만 갖고 있다. 2020년까지 총 80곳을 설치한다는 것이 정부 목표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등에 업고 수소차 신차를 속속 내놓고 있다. 혼다는 작년 10월 도쿄모터쇼에서 ‘올 뉴 FCV’ 수소차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이 차량은 다음달 일본 출시 후 상반기 내에 미국 시장에서도 판매될 예정이다.

수소차와 같은 미래 친환경차가 시장을 형성하려면 초기에는 정부 지원이 불가피하다. 현대차는 처음으로 수소차 부문에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제품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대중 보급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책이 없다면 이 타이틀은 ‘과거의 영광’으로만 남을 수 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