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더 빨라지는 중국의 기술추격
중국 정부가 LG화학, 삼성SDI 등이 생산하는 ‘삼원계’ 리튬이온 배터리를 전기버스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소식은 배터리업계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충격을 줬다. 중국 정부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한 달도 안 돼 노골적으로 비(非)관세 장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한국의 기술을 더 빨리 따라잡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들의 선진 기술에 대한 규제를 마련해 자국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뒤 중국 업체들이 따라잡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등에 제소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어렵다”고 답했다. 중국이 다른 방식으로 보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중국 정부가 첨단기술의 개발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비관세장벽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동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6.9%로 25년 만에 7% 밑으로 떨어졌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高)부가가치 산업을 키워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

중국이 한시라도 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리튬이온 배터리 등의 산업을 키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유다. 지난해 중국이 첨단 제조업 육성을 위한 ‘제조업 2025’ 계획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계획에는 첨단 산업은 정부가 최대 80%까지 투자비를 제공한다는 ‘파격적인’ 방안이 담겨 있다.

인력 빼가기도 비관세장벽 못지않은 큰 문제다.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들에게 ‘백지수표’를 제시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제 한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중국과의 맞대결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중국은 막강한 외교력, 거대한 내수 시장 등 한국보다 활용할 무기가 많다.

이에 비해 한국 업체들이 가진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반도체산업을 지원하겠다고 하면 “왜 대기업을 돕느냐”는 반대가 나오는 걸 보면 기술 격차가 좁혀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