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춘의 데스크 시각] 조태오, 남규만 그리고 '원샷법'
시나리오 작가 이모씨는 요즘 ‘조태오’와 ‘남규만’에 꽂혀 있다. 조태오와 남규만을 합쳐 더 극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그런 인물만 만들어내면 관객 1000만명을 끌어들이는 대작 영화를 제작할 수 있고, 오랜 무명작가 설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조태오와 남규만은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는 가상 인물이다. 조태오(유아인 분)는 작년 인기를 끌었던 영화 ‘베테랑’에 등장하는 재벌 3세다. 남규만(남궁민 분)은 방영 중인 TV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에 나오는 인물로 역시 재벌 3세다. 두 사람은 비슷하다. 이른바 ‘금수저’의 전형이다.

안하무인, 막말, 폭행은 기본이다. 마약파티도 서슴지 않는다. 살인까지 한다. 그러고도 살인 혐의에서 유유히 벗어난다. 이들의 악행은 형사와 변호사에 의해 들통난다. 전형적인 선과 악의 구도다. 관객들로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콩쥐팥쥐》 《흥부전》 같은 얘기에 익숙해진 터라 더욱 그렇다.

惡의 대명사 된 재벌 2,3세

시나리오 작가 이씨는 이 구도를 유지하되 조태오나 남규만보다 더 나쁜 캐릭터를 찾아내려 한다. 그는 “미국 영화는 인터스텔라, 스타워즈, 마션처럼 미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데 비해 국내 영화는 과거나 현재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 중점을 둔 영화나 드라마는 국제시장, 오빠생각, 응답하라 1988처럼 공감을 염두에 두고 있는 반면 현재를 기반으로 한 영화는 흥미를 위해 선과 악의 선명한 구도를 설정하는 게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실제 조태오나 남규만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한 재벌기업 2세는 “그 영화를 보고 어떤 재벌 2세가 영화처럼 사느냐고 가족끼리 반문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어처구니없다는 것이다. 다른 기업인은 “그런 영화를 보면 온몸에 힘이 쫙 빠져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허구다. 애시당초 재벌 2·3세들이 그런 단초를 제시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문제는 현실에서도 모든 현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조태오 등은 국회에 더 많다?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 파동’도 마찬가지다. 여야는 지난 29일 이 법을 처리키로 합의했으나 야당이 파기해 버렸다. ‘대표적인 금수저를 위한 법’이라거나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종인 체제 첫 통과 법안이 원샷법이란 건 말이 안 된다’는 논리가 작용했다고 한다.

그럴듯하지만 뭔가 잘못 알고 있는 듯하다. 대기업 오너들이 이 법을 승계 등으로 악용할 경우 처벌을 받게 돼 있다. 그런데도 이를 금수저법으로 몰아가는 것은 다분히 ‘조태오 남규만에 대한 적개심’을 자극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국내 기업가 정신 지수는 1976년 150.9에서 2013년 66.6으로 37년 사이에 절반 이하로 하락했다는 것이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국회 법안 가결률이 1981년을 100으로 할 때 2013년에 17.6으로 하락한 것이 큰 요인이다. 7개월 끈 ‘원샷법’ 하나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는 국회를 보면 실감나는 대목이다. 조태오 남규만이 국회에 더 많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영춘 산업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