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미래 안 보이는 관광한국
작년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스페인, 스위스 등을 다녀왔다. 일정 수행 중 반나절 정도 방문도시의 주요 지역을 둘러볼 시간이 있었다. 한국과 다른 나라의 출입국 과정뿐 아니라 주요 도시의 관광인프라 등을 외국인 관점에서, 또 경영학자의 눈으로 비교 분석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연말연시인 탓도 있겠지만, 한국에서의 출국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국적기 체크인 카운터 앞의 긴 줄 속에서 1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후에도 검색대와 출국수속대를 통과하기까지 또 다른 긴 줄 속에서 40분을 더 기다렸다. 체크인 카운터, 보안검색, 출국수속 그 자체의 소요시간은 합해서 10분여에 불과했지만 1시간 반을 줄을 서서 허비해야 했다. 저가 항공이면 몰라도 프리미엄 항공사의 체크인 서비스가 이럴 수는 없다. 관광객의 첫 접점인 체크인에서의 나쁜 인상은 오래 남을 것이고,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천공항이 세계 1~2위를 다투는 공항이라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그동안 인천공항은 출국수속 공간이 좁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불평이 많았는데, 전혀 개선된 것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면 어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다시 찾아오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해외 공항에서의 출입국 수속, 특히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불편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국적 항공사와 인천공항공사 모두가 시급히 개선책을 찾지 않으면 아무리 프리미엄 항공사, 최고 공항이라고 스스로 외쳐도 고객, 특히 외국인 고객은 결국 외면할 것이다.

관광콘텐츠 및 인프라 또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스위스는 국토 전체가 관광자원화돼 있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질 높은 관광인력과 인프라가 존재했다. 스페인도 비슷했다. 특히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피카소 등 그 도시 출신 예술가의 작품과 궤적을 따라 관광콘텐츠를 잘 구축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아직 관광콘텐츠와 인프라 구축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보인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은 볼 것이 없고 잘 곳도 마땅치 않으며 그냥 명품, 밥솥, 화장품이나 조금 싼 값에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면세점에서 쇼핑만 하고 가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1년에 1조원이 훨씬 넘는 관광정책 예산을 쓴다는데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창조경제의 핵심에는 서비스산업이 있고, 현 정부는 관광을 포함한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콘텐츠 개발 및 인프라 구축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장기적 로드맵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말로만 관광산업 발전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정교한 정책 ‘개발’과 ‘실행’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공항 입출국이라는 외국인 관광객의 첫 고객 접점에서 생기는 문제 해결과 스페인이나 스위스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전통에 기반을 둔 관광콘텐츠 개발에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

또 중앙정부는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노력해야 한다. 지방에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들어오지 않으며, 지역민들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관광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역의 노력을 지원하는 중앙정부의 정책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단지 인바운드 관광객 수로 정책 효과 및 성과를 측정하고 판단하는 전근대적 관점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창조경제의 동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이런 정책적 노력의 중심에는 한국 고유성에 바탕을 둔 질 높은 관광콘텐츠 개발과 인프라 구축,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12년 만에 감소한 외국인 관광객 수의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밥솥, 화장품, 명품을 면세점에서 싸게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한국 관광산업의 미래는 없다.

조명현 < 고려대 교수·경영학 cho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