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합의서 서명한 날에도 농성한 '반올림'
12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 삼성전자,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를 위한 인권지킴이)은 이곳에서 백혈병으로 대표되는 직업병 발병 등 반도체 사업장 재해예방대책에 관한 최종 합의서에 합의했다. 합의서에 서명하고 나온 송창호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 대표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송 대표는 “8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은 잘 해결돼 다행”이라며 “예방 체계도 마련됐으니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합의한 내용은 삼성전자의 외부 독립 기구로 반도체 직업병 예방 옴부즈맨위원회를 설립하고,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재해관리 시스템을 강화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이 합의로 2007년 3월부터 8년10개월간 끌어온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송 대표를 비롯한 발병자 가족들도 후련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반올림 교섭단 측 대표인 황상기 씨가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합의서에 서명한 뒤 “사과와 보상은 삼성에서 거부하는 바람에 아직까지 어떤 말도 한 번 꺼내보지 못했다”며 “보상과 사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반올림은 농성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은 뒤숭숭해졌다. 그간의 진행 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보상과 사과 문제가 방치됐다”고 오해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실상은 다르다. 삼성전자는 퇴직 후 10년 안에 백혈병 등이 발병하면 인과관계에 상관없이 보상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보상 절차를 밟고 있다. 작년 9월부터 현재까지 총 150여명의 신청자 중 100여명이 보상을 받았다. 송 대표는 “보상과 사과가 충분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후속 조정은 필요 없다”며 “문제는 대부분 해결됐다”고 말했다. 퇴직 후 10년이 지난 환자들도 인도적 차원에서 보상이 이뤄질 정도로 폭넓은 보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송 대표는 “반올림에서 극단적으로 나오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쯤되면 반올림에서 보는 보상과 사과의 기준이 궁금해진다. 반올림의 행보에 대해 발병자 가족들마저 우려하고 있다. 반올림은 이날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98일째 농성을 이어 갔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