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탄소관세·배출권 무기화 '기후금융 패권' 대비해야
지난해 11월30일부터 12월12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2주간 열린 제21차 UN 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1)가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파리협정’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기후변화 분야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번 총회를 계기로 한국이 갈 길도 명확해졌다.

이번 파리총회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전략대로 결론이 났다. 국제적 기후변화 협약에 법적 구속력이 있으면 미 상원을 통과할 수 없다.
[뉴스의 맥] 탄소관세·배출권 무기화 '기후금융 패권' 대비해야
따라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량에 대해 ‘국가별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방안(INDC·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지 않아 상원 비준이 필요 없도록 했다. 각국의 감축 현황을 측정·보고·인증하는 감시체제(MRV)를 지키지 않아도 벌금이나 징계가 따르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이 원했던 선진국의 자연재난에 대한 보상과 책임도 없다고 명시했다. 선진국의 개도국에 대한 원조도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결의문 형태로 통과시켰다. 관련 금액도, 책임도 적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토체제와 달리 중국과 같은 개도국에도 감축의무가 생겼고, 감축 의무량 증가는 가능해도 감소는 할 수 없게 됐다.

프랑스는 COP21 의장국이자 유럽의 대표로서 미국에 맞서 교토체제의 연장을 요구하려 했다. 하지만 파리 테러와 이슬람국가(IS) 사태로 인해 미국과의 대결을 피하면서 그럴 기회를 잃었다. 개도국을 대표해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 동참 요구에 반발해 온 중국은 이번만큼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협조적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중국 내부의 권력투쟁에 있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깨달은 중국인들의 동조를 등에 업고, 석유·석탄산업계 부패척결을 통한 반대세력 제거와 기후변화 체제 준비란 일거양득을 노린다”는 게 골자다. 중국에서 석유, 석탄 등 천연자원 관련 국유기업이 정치권과 밀접하게 연계돼 부패 고리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란 게 이유다.

집요한 탄소관세 공격 가능성

파 리총회 마지막 날 미국과 앙숙인 니카라과가 선언문 채택에 제동을 걸자 미국은 최근 국교를 정상화한 쿠바에 협조를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은 1980년대 산다니스타 좌파혁명을 하며 미 중앙정보국(CIA) 자금과 무기로 무장한 반란군과 전쟁을 치른 인물이다. 오르테가 대통령은 선언문 채택을 막판까지 반대하다가 라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반대를 철회했다.

파리협정은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 공업국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하지 않았던 기존 교토의정서 체제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기후금융 패권 전쟁은 과거 UN이 주도하던 교토체제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기후변화 체제의 도구이자 실체인 기후금융은 선진국의 새로운 금융무기로 개도국을 위협할 것이다.

파리총회 중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중국 베이징의 공기정화를 목적으로 한 3억달러 차관을 승인했다. 이 소식은 유럽 주요 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라오스나 방글라데시 같은 빈곤국으로 가야 할 자금이 중국으로 갔다”며 중국은 뭇매를 맞았고, 중국 대표단의 발언권은 약해졌다. 이는 ADB를 영향권에 둔 일본의 대(對)중국 기후금융 공격으로 보인다. 일본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석탄 발전에 투자한다는 이유로 지구온난화 주범으로 몰았다.

지켜야 할 감축목표는 힘에 겨워

파리총회 직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목표 안으로 제시한 2030년 온실가스 배출 예상치 대비 37% 감축은 사실상 1990년 대비 81% 증가”란 기사를 올렸다. 한국의 199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3억t이고, 지금은 약 7억t이기에 해당 기사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선진국은 예상치 대비 감축이 아니라 1990년 등 특정 과거 연도 대비 감축이 원칙이다. 한국도 여기에 해당하는 셈이다.

한국 현행법은 수출업체에 탄소배출권 구매 의무를 면제해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이것이 탄소관세 공격의 빌미가 되고 있다. 한국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14t이다. 독일 및 일본(9t), 영국(7t)과 프랑스(6t)를 훨씬 웃돈다. 한국은 교토체제에선 개도국으로 간주됐지만, 파리체제 하에선 선진국이 돼 OECD 회원국으로서 1990년 대비 감소정책을 강요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파리에서 “일본이 추구하는 탄소감축정책 이름을 공적개발원조(ODA) 체제에서 기술혁신과 분배의 양자제도로 바꿔 진행한다”고 밝혔고, 파리협정도 이 제도를 인정했다. 즉 일본은 개도국에 신기술로 공장을 건설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여 생긴 배출감축량을 배출권으로 변형시켜 일본으로 가져간다. 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문제를 피해 공장 설립시 원조금 대신 저렴한 정책자금을 투입한다. 타당성 조사, 도로·통신 인프라 구축, 공장 주변 지역의 병원과 학교 등에는 무상원조를 투입한다. ‘하이브리드형 기후금융’의 배출권 확보를 시작한 것이다.

파 리에선 산림탄소를 팔고 싶어하는 뉴질랜드가 주축이 돼 배출권 신시장체제 설립안을 내놓았다. 이 방안에 한국과 일본, 독일, 미국 등도 동의했다. 이에 따르면 배출권 시장 형성 시 국제 공동시장이나 양자체제 모두 가능해진다. 또 2020년 이후 국제 공동시장이 설립된다면 개도국은 배출권 판매, 선진국은 구매만 가능하게 했던 종전의 유엔 청정개발제도(CDM)와 달리 참가국 모두 구매와 판매를 동시에 할 수 있다.

해외공장은 중요한 기후금융 자산

그러나 2020년 이후에도 설립이 확실치 않은 국제 공동시장을 기다리기엔 한국 사정이 너무 급박하다. 정부는 파리에서도 인정받은 일본식 양자체제의 국내 시행 가능성을 분석하고, 각 경제단체는 개도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공장에서 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이를 배출권으로 변형시켜 수입하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또 수출입은행, 국제협력단의 원조 프로젝트에서 환경자본을 찾아내고 이를 배출권으로 변형시켜 21세기 가장 중요한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한 기후변화와 환경금융 패권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이 약속한 감축량은 꼭 지켜 보복성 탄소공격을 피하되 현 배출권거래제를 대폭 개정해 저렴한 해외배출권 수입을 확대함으로써 탄소감축 경비를 줄여야 한다. 배출권 수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기후변화는 한반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다. 일본처럼 개도국에 진출해 있는 생산 기지는 한국의 중요한 기후금융 자산이다.

백광열 < 연세대·MIT 기후변화와 경제 프로젝트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