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파리 협정, 산업혁신의 기회다
지난달 중순 우리의 눈과 귀는 프랑스 파리를 향해 있었다. 그동안 이 문제에 소홀했던 미국, 세계적 환경오염의 새로운 주범으로 지목받아 온 중국 등의 적극적 참여로 세계 모든 국가가 함께하는 UN기후변화협약이 맺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참여국 모두 온실가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매우 적극적이라고 평가되는 ‘파리 협정’을 도출해 냈다. 그러나 이 자리는 세계의 환경과 인류, 미래를 준비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세계의 기존 모든 산업활동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의미도 갖고 있다.

파리 협정이 발표되면서 각국은 금세기 말까지 경제성장정책을 새롭게 짜야 하고, 산업구조와 생산방식의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203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대비 37% 감축이라는 목표를 제시한 것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야겠다.

파리 협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앞으로 각국이 국가별 기여방안(INDC)을 정해서 5년마다 상향된 목표를 제출하고 추진한 뒤 2023년에 모여 다시 한 번 종합적인 이행점검을 하기로 했다. 그만큼 온실가스 감축을 발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국내 산업계는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감축 목표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제시된 2030년 BAU조차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37% 감축 목표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파리 총회 후 환경부는 2020년 배출량 목표치를 BAU(7억7610만t) 대비 30%까지 줄인다는 매우 적극적인 의지를 제시했다. 이는 2013년 배출량 대비 22%나 줄어든 수준으로, 국내 기존 산업·기업들이 일제히 생산공정과 제품구조를 완전히 바꿨을 때나 달성이 가능한 수준이다. 그러나 2013년을 기준으로 환산한다면 목표 연도인 2020년까지의 기간 중 거의 절반을 써버린 상황에서 과연 국내 산업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혁신을 어느 정도 진행해 왔는지 확신이 안 선다. 그동안 수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경쟁력 향상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비현실적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고 배출량 할당 과정에서 업계의 불만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 문제를 규제로만 받아들이고 있어야 할까. 한국의 제조업은 일본과 함께 세계적으로 최고의 에너지효율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 않은가?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렇게 다가오는 환경규제를 국내 산업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로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환경규제는 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공정·제품 혁신에 의한 투입비용의 감소, 신기술 개발 등 혁신에 의한 생산성 증대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목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산업현황에 대한 정밀 점검이 선행돼야 하며, 이에 기반한 로드맵을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에너지 신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에너지의 생산·전달·사용에서 효율을 높이고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며 태양광발전, 전기차, 에너지 고효율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기술혁신과 생산구조 재편에 대한 현실적 가능성을 기업들이 확신할 수 있어야 하며, 이에 수반하는 비용을 부담으로 여기지 않고 투자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기업에 목표만을 강요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되며,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를 제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벤트성 정책으로는 결코 기업들을 안심시킬 수 없다. 정부가 기업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작성한 로드맵을 차근차근 밟아 가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도훈 < 산업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