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과잉 범죄화, 조선시대적 잔혹성
교도소가 넘친다고 한다. 수용 가능 인원의 120%에 해당하는 5만5123명이 교도소에서 겨울을 맞고 있다는 보도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3년의 결과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2012년 4만5488명까지 줄었던 것이 1만명 가까이 늘어났다. 범죄도 처벌도 늘고 있다. 수치만 보노라면 한국은 범죄 공화국이다. 성균관대 김일중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10년 1084만명이던 전과자 수는 2014년 1148만명으로 껑충 늘어났다. 4년간 64만명의 전과자가 생겨났다. 15세 이상 성인 인구 4명 중 1명꼴이다. 목포 충주 강릉 등 평균적인 도시의 시민 수에 필적하는 전과자가 매년 만들어졌다. 과잉규제, 과잉범죄화, 과잉처벌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칼날 침대’처럼 착착 돌아가는 중이다. 김 교수의 예측으로는 2024년이면 성인 인구 3명 중 한 명이 전과자다.

한국은 형사 입법의 천국이다. 국회는 행정규제의 실효성을 담보한다는 명분으로 거의 모든 행정규제법에 형사처벌을 명기하고 있다. 경제범죄는 더욱 그렇다. 노래방에서 술을 팔면 2년 이하의 징역에, 2000만원 벌금이다. 술 판매는 단순히 당국의 허가 여부에 달린 것으로 소위 원죄 십계명에 도전하는 파렴치범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런 행정규제 위반에조차 징역형을 부과한다.

서울 양재대로에서 보행자가 도로를 횡단하거나 자전거를 타면 1년 이하 징역, 1000만원의 벌금이다. 이 모든 것을 징역화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미국에서도 종종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기는 하는 모양이다. 미국의 좌익들은 미국 교도소가 자본주의 덕분에 만원이 됐다고 공격하지만 SWAT 출동 장면이 TV에 방영되거나 범죄 현장이 전파를 탈 때마다 의회에서는 범죄 목록을 하나씩 추가한다고 한다. 물론 그때마다 공무원들의 범죄 관련 예산도 늘어난다.

박근혜 정부 들어 범죄 목록은 더욱 길어지고 있다. 10여개 경제민주화 법률은 대부분 엄격한 형사처벌 조항을 담고 있다. 경제민주화 조치로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형사범죄가 창설됐는지 파악조차 어렵다. 한 개의 법률에 여러 가지 죄목이 열거되고 이 모두에 징역형이 따라붙는다. 이런 현상을 과잉 범죄화라고 부르지만 과잉이 아니라 차라리 ‘모든’ 경제활동의 범죄화(criminalization of all bussiness activities)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 형사처벌하는 범죄 항목 수는 모두 8200개에 달한다.

사법(私法)의 공법(公法)화도 그런 결과를 낳고 있다. 모든 문제를 국가가 직접 개입해 해결하는, 소위 국가의 권력 작용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검찰의 한건주의도 문제다. 이석채 전 KT 회장은 6개월 동안 수도 없이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당했다. 그리고 법원에 가서야 필사적 재판을 거쳐 무죄를 받았다.

조석래 회장은 무려 8년 동안 수사를 받았다. 그동안 특수부에서만 세 번, 부장검사만 8명이 거쳐갔다. 그것도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가는 행위 때문이었다. 김승연 회장은 네 번씩이나 압수수색을 받았고, 기어이 털어서 나는 별건의 먼지 때문에 구속됐다. 그렇게 구속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사람이 죽어나가야 비로소 감옥에서 풀려난다. 몇 명이 더 죽어야 장기 구금이 사라질지 알 수 없다. 간암 3기 들어서야 감옥에서 병원으로 옮겨진 기업인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민사상 손해배상의 문제일 뿐인 죄목들이 한국에서는 형사 처벌된다. 대한민국의 형벌제도가 슬금슬금 조선시대의 잔혹성을 닮아가는 중이다.

구한말 한성감옥의 교수형 장면을 목격한 한 독일기자는 “말이 교수형이지 목을 매다는 것은 죄수의 모든 뼈를 바수어버린 다음 최후의 순간에 하는 형식상 절차였을 뿐”이었다고 썼다. 질투와 증오심, 한국인의 심성 깊숙한 곳에 내재한 소위 근본주의적 열정이 은밀히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당파가 다르다고 상대방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노비로 만드는 그런 과격성이 아직 한국인의 혈관을 흐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