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적자 보험상품 내놓으라는 국회
“정부가 규제를 풀면 뭐합니까. 정치권을 한 번 보세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한방(韓方) 비급여 의료비를 실손의료보험으로 보장하는 상품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있잖아요.”

의외였다. 한 보험회사 사장에게 “보험상품과 가격에 대한 규제가 확 풀려서 앞으로는 신나게 경쟁하는 일만 남은 게 아닌가”라고 말을 건넸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그는 “막대한 손실이 불 보듯 뻔한 상품을 어떻게 내놓을 수 있느냐”며 “보험을 아직도 하나의 산업이 아닌 복지의 수단쯤으로 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푸념했다.

보험사들의 속앓이가 심하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한방 비급여 의료비를 실손의료보험으로 보장하라는 정치권의 압력 때문이다. 보험사를 감독하는 금융감독원이 통로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에도 “업계의 분위기를 조성해달라”는 압박이 밀려든다.

실손보험의 韓方 보장 압박

금융당국은 2009년 실손보험을 표준화할 때 한방 비급여 의료비를 보장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방에선 질병 치료가 목적인지, 건강 유지가 목적인지 명확하지 않은 사례가 많아 실손보험의 보장 범주에 넣으면 과잉 진료, 보험사 손실 확대, 보험료 인상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6년 만에 총대를 멘 사람은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다. 국회에서 금융분야를 관장하는 정무위원회의 여당 간사다. 금융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김 의원은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의료비를 보장하라고 존재한다”며 “한방 비급여를 실손보험 보장에서 제외한 것은 국민의 진료 선택권을 박탈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엔 한의약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한의실손보험 출시에 대해 관련 부서와의 협의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으면 직권을 써서라도 출시에 힘을 쓰겠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의 엇박자

실손보험은 국민의 약 66%인 3403만여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가입자들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의료비 부담을 상당히 덜 수 있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실손보험에서 만성적인 적자를 보고 있다. 10개 손보사들의 실손보험 평균 손해율은 올해 129.8%까지 상승했다. 들어온 보험료보다 나가는 보험금이 많은 구조가 고착됐다. 물론 보험업계가 위험률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하고 경쟁적으로 상품을 판매해 손실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방 비급여 의료비까지 보장하면 적자폭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것으로 보험사들은 우려하고 있다. 보험업계가 더 답답해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의 ‘엇박자’다. 한쪽에선 가격과 상품에 대한 규제 권한을 대부분 내려놓겠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특정한 상품 출시를 강요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한방 비급여 실손보험 상품은 보험사가 개별약관에 따라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개발해 판매할 수 있다. 적자가 뻔해 개발하지도 판매하지도 않는 것이다. 한방 비급여 보장상품 출시 여부는 다른 보험상품처럼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판단하도록 하는 게 시장 원리에 맞다. “그런 상품을 판매하면 배임이 된다”는 보험사 사장들의 하소연에도 김 의원이 귀를 열면 좋지 않을까.

류시훈 금융부 차장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