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벼랑 끝 화학산업, 자율 구조조정에 답 있다
50만 화학산업인의 축제인 ‘화학산업의 날’(10월31일)이 7회째를 맞았다. 화학산업의 날은 70여년의 국내 화학산업 역사에 비해 늦게 시작됐지만 지난 7년간 미래 화학산업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는 열린 장으로서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또 인적 자원이 가장 큰 경쟁력인 한국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유공자를 발굴, 그동안 149명을 포상했으며 올해에는 최대 규모인 33명의 산업유공자를 포상했다. 앞으로도 유공자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화학산업 종사자의 사기를 진작함으로써 화학산업 발전을 유도해 나갈 계획이다.

화학산업은 국내 주력산업에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핵심 기간산업이자 대표적인 수출산업으로서 국가 경제성장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화학산업은 곧 도래할 융복합 신(新)산업 분야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 화학산업을 둘러싼 위기의식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국내 화학산업의 경쟁력에 대한 우려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그때마다 업계와 정부의 긴밀한 협조와 발빠른 사전대응으로 난관을 헤쳐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화학산업이 직면한 국내외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둡고 두렵기만 하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증폭, 북미의 셰일가스 기반 화학산업의 재도약, 중동의 천연가스 기반 대규모 설비, 중국의 석탄화학 기반 대규모 신증설 및 자급률 확대에 따른 글로벌 경쟁구도 심화란 높은 파도가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화학산업 최대 시장인 중국의 자급률 상승에 따른 수출시장 축소는 우리 화학산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한 예로 석유화학 3대 부문 가운데 중국 내 자급률이 크게 상승한 합섬원료의 대(對)중국 수출물량은 올 들어 9월까지 85만t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23.3% 줄었으며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세계 최대 석유화학 제품 수요국인 중국의 경기부진도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중국 정부가 금리인하 등을 통해 공격적인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지만, 과거처럼 연 8%대 성장을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다.

이처럼 화학산업의 위기요인들이 하나둘 가시화되면서 업계에서도 자발적인 경쟁력 강화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런 위기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면적인 구조조정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업계에서도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화학산업의 구조조정은 민간 주도로 기업의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진행돼야만 완벽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업계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각종 지원제도와 규제 완화가 절실한 까닭이다. 또 화학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여러 지원책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돼야만 급변하는 시장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진정한 사업재편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기업 및 주요 산업단체의 의견을 반영해 세제와 자금지원뿐만 아니라, 상법과 공정거래법상 절차의 합리화 및 규제 특례를 하나의 패키지로 일괄 제공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이른바 ‘원샷법’으로 불리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이다. 화학산업이 공급과잉의 시대에 발빠르게 대처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이 법안이 조속히 통과돼 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국내 화학산업은 선진국을 모방하고 추격해온 과거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체계에 맞는 선도자 역할을 위한 전략을 다시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이제는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하며, 그 도구로써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이 절실히 요구된다.

김현태 < 한국석유화학협회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