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글로벌 인재포럼을 열며
인간에 대한 연구는 언제나 어두운 기운으로 가득차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일 뿐이며, 조건 지어진 존재이며, 죄악에 물든 존재였다. 맬서스가 처음 인구를 과학의 영역에서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인간은 성적 욕망의 동물적 존재일 뿐이어서 결코 자연의 힘을 능가할 수 없었다. 인간 사회에 대한 연구도 그랬다. 사실상 첫 사회학자 뒤르켐이 사회를 그 자체로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을 때 첫 주제로 선택한 것은 자살이었다. 콩도르세의 집단의사결정에 관한 연구도 인간 비관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모두가 저주의 학문이었다. 이런 주장을 접하다 보면 인간은 스스로를 저주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종교는 줄기차게 인간을 하잘것없는 존재로 말하고 있다. 인간을 긍정적으로 말하는 종교는 별로 없다. ‘죄 지은 존재’는 종교들을 관통하고 있다. 자신의 종교에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마르크스 경제학 역시 저주의 학문체계였다. 불평등 이론의 피케티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은 이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 같은 불평등 이론가이지만 앵거스 디턴에 와서야 그 과정이 빈곤으로부터의 ‘대탈출’이라는 것이 인지되었다. 저주는 극복되었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자원이라는 생각은 최근 들어 제기된 새로운 개념이다. 줄리언 사이먼이 그런 경우다. 그는 인간을 ‘근본 자원’이라고 불렀다. 자원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석유나 기타 자원이 얼마나 무한한 것인지, 무엇보다 맬서스류의 식량생산의 한계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 개념인지를 그는 설명해냈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무한한 자원이 있었던 것이다. ‘근본 자원’의 목차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사이먼이 전혀 다른 세계, 다시 말해 인간 부정이 아닌 인간 긍정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지구가 죽어간다고? 그것은 언론매체가 대중에게 겁주는 방법이야.” “인간은 파리나 시궁쥐처럼 새끼를 낳지는 않아”라는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인구 증가가 재앙이라는 주장은 현대인들의 사고를 지배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인구 감소, 즉 저출산과 더불어 고령화가 문제라고 신속하게 바뀌었다. 지식 분야에서 이처럼 큰 스윙도 없었다. 이는 최근 20여년 사이에 생겨난 새로운 개념이다. 산업화 이후 줄곧 늘어나기만 하던 인구는 선진국들에서 갑자기 증가를 멈췄다. 전쟁이 아니고도 이렇게 인구가 감소한 것이 놀랄 일이었다. 이 새로운 사태에 직면해 국가는 또 신속하게 자신의 과업을 바꾸었다. 산아제한에 목을 매던 한국 정부도 지난 10여년간 큰 돈을 이 새로운 분야, 즉 저출산과 고령화 대책에 쏟아부었다. 거의 120조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아니, 해결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모두가 일찍 죽어야 할까. 아니면 여성들이 종의 먹이, 다시 말해 출산기계로 다시 전락해야 할까. 저출산이나 고령화가 많은 파생적인 문제를 낳고 있는 것과 그 자체가 해소돼야 할 문제라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축복이다. 노인문제는 단순히 노인에 대한 연령 기준 때문에 생겨난 문제에 불과할 수도 있다. 연령 기준이 새로 정해지고 정년이 폐지되면 거대한 그리고 건강한 새로운 노동인구가 우리 앞에 출현하게 된다. 지금도 보통의 경우라면 일자리가 모자라지 노동인구가 모자라지는 않는다. 이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유아 사망이 줄어들면서 생겨난 저출산을 저주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1인당 생산성이지 총인구가 아니다. 그래도 모자란다면 인구가 넘치는 개도국에서 보충할 수도 있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가 한반도의 이주자들 아닌가. 문제는 우리 마음 속의 개방성이다. 새로운 인적자원 이론에 대해 공부하는 기회가 다음주 11월3일부터 5일까지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 파르나스호텔에서 열린다. 바로 한경 글로벌 인재포럼이다. 올해의 주제는 ‘다양한 인재가 세계를 바꾼다’이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가를 바란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