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협동조합법이 오히려 독이 돼서야
정치인들이 하는 일이 늘 그렇다. 내용을 몰라도 표에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들이다. 관료들은 자리만 늘어나면 만사 오케이다. 국회가 어떤 법을 만들 건 관심 밖이다. ‘협동조합 90%는 좀비’라는 최근 한경 보도에 문득 떠오른 것은 ‘생각 없는 국회의원’과 ‘영혼 없는 관료’들이었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우후죽순처럼 불어난 협동조합이 7700여개다. 이 가운데 제대로 굴러가는 조합이 10% 정도라니 기가 막힐 일이다. 서민과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며 목청을 높이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지.

졸속 입법이었다. 정부 지원이 자주·자립·자치라는 협동조합의 원칙을 훼손해 조합에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랐다. 1인1표의 의사결정 방식이 정치적 결정이어서 경제적 효율이나 고용 창출과는 무관할뿐더러 시장경제의 토대를 해칠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그러나 입법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가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시민단체들은 통합진보당 의원이던 이정희를 통해 제정 청원을 했다. 기획재정부도 의원입법 형태로 법안을 넣었다. 3자 법안을 버무려 출석 의원 176명이 전원 찬성한 법이다. 조합 운동을 하던 사람들마저 그 발빠른 처리에 어리둥절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정희 의원이 시민단체와 손잡은 것은 그렇다고 하자. 손학규 대표의 발의는 더욱 정치적이다. 민주당이 사회적 경제조직 운동의 선봉에 섰던 박원순 씨를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려 혈안이던 시기였다. 협동조합의 정치 세력화 우려 속에도 임기 내 협동조합 8000개를 탄생시키겠다며 전폭 지원에 나선 박 시장 말이다.

한나라당의 찬성은 말 그대로 얼떨결이었다. 몇 달도 안 돼 협동조합이 지방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서둘러 개정안을 낸 것이 한나라당의 후신인 새누리다. 소위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내용조차 모른 채 찬성해버린 법이다.

민주당 의원이었던 정봉주의 얘기는 기가 막힌다. “시민을 씨줄과 날줄로 만들라는 협동조합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인데 (이명박) 가카께서 아무것도 모르고 통과시켰다. (나도) 경북 봉화에 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배후는 박원순 시장이다.” 조롱거리가 돼버린 여당이다.

국회의 일탈을 견제해야 할 기재부도 옹호자이긴 마찬가지였다. 반대해봐야 시끄럽기만 할 테고, 기재부에 국 단위 조직을 신설해준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법이 통과된 뒤 손학규 대표는 이런 얘기를 했다. “입법사상 유례없이 신속한 처리였다. 정부 여당이 협동조합을 위험하다고 했어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기재부가 매우 호의적이었다.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다.” 하긴 얼마 전 여당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사회적경제기본법이라는 것을 들고 나왔을 때도 아무런 견제를 하지 않은 기재부다. 거대 조직이 신설된다는 환상 탓이었을까.

협동조합기본법만 그런 게 아니다. 2007년 도입된 사회적기업지원법도 마찬가지다. 사회적기업진흥원이 설립되고 수많은 지원이 이뤄졌지만 고용 효과는 미미하다. 고용이 있었어도 기존 고용을 대체하는 데 불과하다. 정부 지원에만 기댄 채 정치 성향만 커지는 것이 사회적 기업이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조직은 자연생태계에서 탄생하고 소멸하는 것이다. 국가가 지원할 일이 아니다. 정부 지원 자체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은 표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조합을 지원하고, 조합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손뼉을 맞춘다. 운동가들은 협동조합의 범위를 금융과 보험 분야까지 넓혀 달라고 아우성이다. 협동조합 운동을 통한 국가의 소멸을 부르짖은 ‘원조 아나키스트’ 프루동의 부활이다.

정상화가 답이다. 적어도 협동조합의 정치 관여 행위는 원천적으로 금지하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협동조합은 반드시 철저한 감독을 받도록 해야 한다. 좀비 조합도 없어야겠지만, 정치 서포터스를 키우는 데 혈세를 투입해서야 되겠는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