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11개 안보법제를 제·개정한 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곳곳에서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항의 집회도 열리고 있다. 일본 식민지배를 경험한 한국으로서는 어떻게 보면 조건반사처럼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무조건 위협으로 봐야 하는지는 좀 더 생각해볼 문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집단안보 체제의 일환이다. 중국의 군사적 부상에 걸맞은 대응이라는 1차적 사정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안보법제의 통과로 미국이 집단안보 틀 속에서 일본을 활용하기가 쉬워졌다. 한·미·일 간 집단안보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 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럽에는 나토(북대서양조양기구)라는 집단 안보체제가 작동하고 있다. 2차대전 패전국인 독일 역시 여기에 속해 있고 일정한 경우 전투도 할 수 있다. 반면 태평양에서는 중국 혹은 북한의 위협에 맞설 제대로 된 집단 안보체제가 없다.

안보법제 개정에도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안보법제에는 자위대의 해외파병과 동맹국 지원 등을 담은 ‘무력공격 사태 대처법’과 ‘국제평화지원법’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법에서도 무력 행사는 금지돼 있고 후방지원이 주 업무다. 미국 등 동맹국에 탄약을 제공하고 병사를 수송하는 내용을 담은 ‘중요 영향사태 안전 확보법’에서도 무기는 수송대상에서 빠져 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이 “일본의 집단자위권은 우리에게 득이 될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집단적 자위권은 미국이나 한국처럼 동맹국이나 우방국을 도우려고 행사하는 것인데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우리로서는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이런 움직임이 중국과 북한을 자극해 군비경쟁을 낳을 수도 있다. 이는 또 다른 문제다. 반면 중국의 안보비용 상승은 한반도 통일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일본 집단자위권에 대한 유연한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