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의 데스크 시각] 차라리 국회의원 확 줄이자
미국 대선전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민주당) 대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공화당)의 양강 대결로 굳어질 거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미 대선의 풍향계로 통하는 아이오와주의 공화당 성향 유권자를 상대로 몬머스대가 지난 3일 발표한 조사에서 1, 2위는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30%)와 빈민가 출신의 뇌신경외과의사인 벤 카슨(18%)이었다. 두 사람 다 직업정치인과는 거리가 멀다. 부시 지지율은 8%였다.

美대선 '정치 아웃사이더' 돌풍

클린턴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주·무소속)에게 고전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블룸버그와 지역 신문인 디모인레지스터의 공동조사 결과 지지율이 37% 대 30%로 근소한 우위다. 지난 5월 57% 대 16%에서 격차가 확 줄었다.

5일 서베이USA의 전국 여론조사에선 트럼프가 힐러리와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45% 대 40%로 앞선 것으로 나왔다. ‘정치 아웃사이더’들의 초반 기세가 거세다. ‘반짝 돌풍’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성 정치에 대한 강한 불신으로 미 국민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몬머스대 조사에서 응답자의 66%는 “비정치인이 대통령이 돼 워싱턴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답했다.

불신 받는 미국 정치는 그래도 한국 정치에 비하면 양반이다. 정치의 금도는 남아 있다. 적어도 우리처럼 정치가 실종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는 아니다. 국회 과반의석을 가진 여당이 법안 하나 처리하지 못해 다수결원칙이라는 민주주의 기본원리조차 부정하는 일은 없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기업인 망신 주기 청문회’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

미국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그 정도라면 한국 정치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불신을 넘어 극도의 혐오 단계로 정치가 국가적 리스크가 된 지 오래다.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포퓰리즘 공약에 나라가 거덜날 판이다. 노동개혁 등 당장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는 정치 실종에 막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수출에 비상이 걸리고 실질 국민총소득이 4년 반 만에 떨어지는 등 경제가 기로에 선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재벌개혁 타령이다. 세계 각국이 법인세를 경쟁적으로 낮추는데도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야당이다. 야당은 노동개혁의 ‘물타기 카드’로 재벌개혁을 전면에 내세웠다. 노동개혁에 사활을 걸겠다는 여당 대표의 입에서도 재벌개혁 병행론이 흘러나왔다. 경제민주화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류 정치가 경제 발목잡아

‘쪽지예산’ 등 구태정치도 모자라 자녀 취업 청탁과 성추행 의혹을 받는 의원들까지 나타난 게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국민은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차라리 국회의원 수를 확 줄이자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지난 7월 갤럽조사에서 국민 57%는 “국회의원 숫자를 줄여야 한다”고 답했다.

정치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는커녕 국가에 부담이 된다면 국민 세금으로 1억원 연봉의 의원직을 300개나 유지할 이유가 없다. ‘블랙코미디’로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자질 없는 의원들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자발적 혁신을 이루지 못하면 머지않아 ‘국회의원을 절반으로 줄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게 미국 대선전의 메시지다.

이재창 부국장 겸 지식사회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