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의 데스크 시각] 쿠팡과 티몬도 외국 기업인가
롯데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기업의 국적 논쟁이 이슈가 됐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를 계기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승리가 확실해졌는데도 부정적 여론이 사그라들지 않는 배경에는 이 논란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국민은 이번 롯데 사태를 지켜보면서 크게 세 가지 ‘불편한 진실’에 직면했다. 한국 5위 대기업이 지배구조상 일본 기업 아래에 있다는 점, 롯데가(家) 장남이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아버지와도 일본어로만 대화를 나눈다는 것, 여기에 광윤사 L투자회사와 같은 복잡한 소유구조까지 더해져 분노와 짜증이 증폭됐다.

일자리 창출하는 곳이 국적

우리 주위에는 소유·지배구조 잣대로만 보면 롯데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정체성에 혼란을 느낄 만한 기업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내 1위 소셜커머스 업체 쿠팡은 경영자의 국적, 자본의 국적, 모기업의 국적까지 모두 미국이나 일본이다. 이 회사를 창업한 김범석 대표는 일곱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다.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 한국 쿠팡의 지분 100%를 보유한 모기업인 포워드벤처스LCC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있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1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포워드벤처스LCC의 핵심 주주가 됐다.

소셜커머스 2위 업체 티켓몬스터의 창업자 신현성 대표는 박정희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과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신직수 씨의 손자다. 그 역시 미국 국적의 이민 1.5세다. 티몬의 주인은 세 차례 바뀌었는데 모두 미국계 기업이거나 펀드들이다. 국내 오픈마켓 1·2위 업체인 G마켓과 옥션은 미국의 세계적 e커머스 업체인 이베이가 인수한 뒤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이들 기업은 어느 나라 기업인가. 소유·지배구조로 놓고 보면 소비자들이 느끼는 정서와 달리 한국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글로벌기업엔 국적 개념 없어

특히 쿠팡은 경영자·주주의 국적은 물론 모기업 소재지까지 미국에 있다 보니 ‘기업의 원적’상 한국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국내 소셜커머스 업체 중 가장 많은 고용 창출과 투자를 하고 있는 곳이 쿠팡이다. ‘로켓 배송’을 위해 1500억여원을 들여 전국에 8개의 물류센터를 지었고 75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배송기사인 쿠팡맨만 2000여명이다. 이들은 택배기사로는 파격적인 임금·복지 혜택으로 업계 종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90년대 경영학 교과서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용어 중 하나가 ‘다국적 기업’이었다. 요즘은 글로벌 기업이 그 표현을 대신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이 모국의 본사와 해외 지사들 간 개념이라면, 글로벌 기업에서는 아예 본국이나 자국 개념이 없다. 기업은 전 지구촌을 대상으로 최적의 생산·판매처를 찾고, 그 기업이 들어서는 지역에서는 일자리와 산업 생태계 형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롯데 사태는 크게 두 가지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하나는 ‘후계 승계’도 경영의 핵심 요소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의 핏줄’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한국 롯데는 일본 롯데에 비해 매출이 15배 크고, 국내 고용 인원만 35만명에 이른다. 롯데가 한국 기업인지 일본 기업인지의 논란은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머리로 따져야 한다.

윤성민 생활경제부장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