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통령의 대사면, 끝낼 때 됐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기업 회장 한 명을 포함해 6527명이 특별사면됐다. 모범수, 서민·생계형 수형자, 운전면허 사범, 기타 행정제재자 등 특사 혜택 대상자가 총 221만여명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는 작년 설 명절에도 서민·생계형·불우 수형자·모범수·운전면허 행정제재자 등 약 290만명을 특별사면·감면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헌법상 권리이므로 그 행사는 적법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특별사면·복권’은 과거 임금이 신민(臣民)에게 베풀던 대사령(大赦令)을 닮았다. 우리는 법치(法治)가 ‘누구도 법 위에 없고, 누구에게나 법이 적용됨’을 의미한다고 배웠다. 원칙적으로 국민주권국가에서는 사면받는 자도 사면하는 자도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국가의 사면은 꼭 필요할 때 최소한으로 행사해야 함이 마땅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금까지 총 89명의 형을 사면했는데 이 숫자는 레이건, 클린턴, 부시 부자 등 4명의 전직 대통령이 사면한 합계보다 많다. 그러나 우리 대통령들은 통이 큰 것(?) 같다. 필자가 집계해 보니 김영삼 정부가 총 704만명, 김대중 정부 1038만명, 노무현 정부 438만명, 이명박 정부는 433만명을 사면·감면·복권했다. 이 정부도 511만명이다. 대부분 운전면허 사범이기는 하지만 지난 22년여에 3120여만명, 인구의 63%에 해당하는 대상자가 혜택을 봤다.

이런 사면행위를 보면 과연 우리나라가 법치국가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수백만명에 이르는 대통령의 사면은 대통령을 법 위에 우뚝 선 존재처럼 보이게 한다. 대통령이 그렇다면 국민 개개인도 자신의 법을 내세울 유혹을 받지 않겠는가. 야당, 민주노총, 시민단체, 전교조의 막무가내식 초법행위에도 이유를 달 수 있다. 인간에게 범법, 탈법의 유혹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사회에 엄밀한 법망(法網)이 존재하는 것이다. 정부 스스로 이 법망을 찢으면서 국민에게 준법의식을 요구할 수 있는가.

한국에는 이른바 ‘생계형 범죄자’가 넘치고 있다. 과거 정치인들이 생계형 구제를 ‘정의를 행하는 길’로 포장해 선전하고 이번 사면처럼 대규모로 풀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민·약자라고 특별히 법치를 풀어주면 생계형 범죄는 서민의 권리가 되지 않겠는가. 이는 서민을 상습적 범죄자로 기르는 길이다. 범죄자는 범죄자 자식을 기르고 서민 범죄자는 서민을 등쳐먹는다. 부모가 음주운전하면 아들이 음주운전을 배울 것이다.

서민은 우리 사회 법의식을 만드는 기층(基層)이다. 이들이 범법자가 되면 국회의원과 대통령도 법을 무시하는 자를 선호할 것이다. 이리하여 나라가 퇴락(頹落)하면 불쌍하고 오염된 서민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이는 약자를 위한 정치가 될 수 없으니 국가의 서민 지원은 언제나 그들의 시장경제 적응력을 높이고 사후에 부족한 수확을 보태주도록 하는 데 그쳐야 한다.

이번 사면의 취지로 정부는 경제 활성화, 국민 통합, 국민 사기 진작 등을 열거했다. 그러나 정직하게 살고 싶은 절대다수 준법시민들에게 음주운전자 범법자들이 당당히 사면받고 풀려나는 것이 무에 신나고 자신감 오르는 일이겠는가. 과연 이런 방법으로 국민 통합, 경제 활성화가 이뤄질 것이며 이룬다 한들 올바른 ‘국가발전의 길’이 되는 것인지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건국 67주년을 맞아 우리는 세계에 유례없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뤘다고 자랑하지만 법치에서는 선진국의 발끝에도 이르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 “정당하지 않은 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고, 지금도 국회의원들이 툭하면 정부의 공법질서 확립을 독재정권의 탄압행위라고 외치고 있다. 이 수렁 같은 현실에서 법치 문명국을 이루기란 얼마나 어렵고, 강철 같은 국민의 의지력을 요구하는 과업이겠는가. 정치 지도자들은 이제 이 시대적 사명을 엄중히 여기고 대사면 같은 일을 근절할 방도를 마련하기 바란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