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플랜트 위기' 부른 공대의 현주소
서울대에서 화공플랜트를 가르치는 한종훈 교수 연구실에 속한 대학원생은 30여명에 이른다. 다른 연구실의 대학원생이 보통 10명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3배나 많다. 플랜트를 공부해 관련 업계로 진출하고 싶어하는 학생은 많지만 이를 가르치는 교수는 턱없이 적은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는 최근 학부와 대학원 졸업자 중 플랜트업계에 취업하는 비율이 30~40%에 이른다. 반면 플랜트를 전공한 교수는 전체 교수 32명 중 2명(6%)뿐이다. 공학교육과 산업계의 인력 수요 간 ‘미스매칭(수급 불균형)’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본지는 6일 조선 및 건설업계 플랜트부문 실적쇼크의 배경엔 공대에서 플랜트 전공 교수가 점점 사라지는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일선 공대 교수들은 다소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학장은 “논문 실적을 위주로 교수를 뽑는 건 치열한 대학 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대학들이 이 같은 결과를 조장하는 것처럼 비쳐져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논문을 잣대로 한 각종 국가연구사업과 평가 등이 대학을 옭매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억울함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이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다. 지난해 정부가 ‘공과대학혁신특별위원회’를 범정부 기구로 구성하고 각종 개혁안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선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한 대학 관계자는 “혁신을 떠들며 시끄럽기만 하지 무슨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다.

고사위기에 놓인 플랜트 교육의 현실은 공대의 위기를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플랜트뿐 아니라 기계, 철강 등 우리 주력산업과 연관된 다른 분야들도 비슷한 문제를 앓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계에서는 “이러다간 한국 공대의 역할이 우수한 대학원생을 미국 대학에 제공하는 데 그치게 될지도 모른다(이건우 서울대 공대학장)”는 우려까지 나온다.

지난 6월 한국의 인간형 로봇 ‘휴보’가 미국 재난 로봇 경진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논문 편수 채우기에 급급하다면 제2, 제3의 휴보가 탄생할 수 있을까.

오형주 지식사회부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