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의 데스크 시각] 아베노믹스 vs 근혜노믹스
신중론도 있지만 아베노믹스(일본 아베 신조 정부의 경제정책)는 일단 성공이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일본 경기가 살아났다. 일본 경제는 올 1분기 1.0% 성장해 한국(0.8%)을 뛰어넘었다. 대졸 취업률은 97%에 달한다. 무제한 양적 완화와 재정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은 사상누각이 될 것이란 한국 관료들의 예언이 무색해졌다.

우린 엄두조차 못 내는 구조개혁도 착착 진행 중이다. 일본은 파견근로자의 파견기간 3년 제한을 없애는 노동개혁법안을 최근 중의원(상원에 해당)에서 통과시켰다. 올초엔 기업의 사업재편을 촉진하는 산업경쟁력강화법을 시행했다. 전국에 특구를 지정해 규제를 과감히 풀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입만 떼면 일본을 부러워하는 이유다.

아베는 치밀한 계획 갖고 실행

아베노믹스의 성공 비결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추진방식이다. 일본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인 모노즈쿠리(物作り·물건 만들기)의 성공방정식과 비슷하다. 모노즈쿠리엔 3대 요소가 있다. 첫째 단도리(段取り). 일의 순서를 짜는 것이다. 둘째 마모리(守り). 짜여진 순서를 철저히 지키는 것. 셋째 고다와리(拘り). 목표에 꽂혀 파고든다는 의미다. 모든 일에 매뉴얼을 작성하고, 그걸 성실히 지키며, 집요함까지 더한다는 일본다운 프로세스다.

아베노믹스가 딱 그랬다. 설계자인 하마다 고이치 예일대 교수는 첫 번째 화살(금융완화), 두 번째 화살(재정확대), 세 번째 화살(성장전략) 등 치밀하게 순서를 짰다(단도리). 아베 총리는 이 순서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켰다(마모리). 반대도 있었지만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고다와리).

이 점에서 근혜노믹스(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는 대조적이다. 정책 우선 순위가 불분명해 일관성이 떨어졌다. 대통령 선거 땐 경제민주화, 집권 직후엔 창조경제, 이듬해엔 경제활성화, 올 들어선 4대 구조개혁 등 오락가락한 국정 아젠다만 봐도 그렇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세웠던 ‘4대 국정기조-13대 전략과 140개 과제’는 2013년 말 ‘비정상의 정상화-10대 부문 80대 과제’로 바뀌었고, 2014년엔 ‘경제혁신 3개년 계획-3대 전략과 15대 핵심과제’로 변신한다. 이게 올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선 ‘5대 경제활성화 과제’로 재편됐다.

정부, 정책 순위와 로드맵 있나

박근혜 정부가 과연 어떤 정책 로드맵을 갖고 집권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2년 반 동안 대통령이 동분서주했다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물론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국회만 가면 되는 일이 없고, 작년 세월호 사고와 올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등 변수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 상황은 야당 탓, 복병 탓만 하고 있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수출은 6개월째 내리막이고, 청년실업난은 악화일로다. 조선 철강 자동차 등 주력 산업도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엔 아직 2년 이상의 시간이 있다. 남은 임기 동안 꼭 달성해야 할 정책의 우선순위부터 정하자. 가장 시급한 노동개혁이 첫 번째로 꼽힐 만하다. 그 다음엔 실행계획을 세우고 고집스럽게 추진하자. 선진화법은 대통령이 나서서 야당을 설득하며 돌파해야 한다. 언제까지 아베노믹스를 부러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는가.

차병석 경제부장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