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그리스 닮은꼴' 한국 노동계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15억유로(약 1조8700억원)를 제때 갚지 못해 촉발된 ‘그리스 사태’는 다차방정식이 됐다. 국제 외교 무대에서 그리스에 대한 미국과 러시아의 ‘러브콜’, 강경 대응을 외치는 독일과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만은 안 된다는 프랑스의 대립 등은 3차 구제금융 협상 타결 이후에도 복잡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단순방정식이다. 제 분수를 모른 국민의 호사(豪奢)와 그런 상황을 만든 포퓰리즘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은 모럴 해저드

그리스 사태의 배경으로 국가 주권과 초국가적 기구의 대립을 꼽는 시각도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태동 이후 유로화를 좌지우지해온 독일의 긴축정책과 유럽중앙은행의 강경한 인플레 방지책 등이 그리스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모럴 해저드가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999년 유로존 가입 이후 독자적 통화정책이 불가능해진 탓에 경제 체력을 키우고 무역흑자를 내는 게 중요했지만 그리스 정치권은 더 많은 복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퇴직연금은 생애 최고 소득의 95%까지 올랐고,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관료 경찰 소방수 등 공무원은 인구 4명당 1명꼴로 늘었다. 관광산업(서비스업 비중 90%)에 치여 제조업(5.7%)은 등한시됐다. 그리스가 대규모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성적표를 받은 것은 당연지사다. 2010년 5월과 2012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은 배경이기도 하다.

눈을 요즘의 국내 상황으로 돌리면 그리스와 닮은꼴이 적지 않다. 재정에서 수백조원을 메워줘야 하는 공무원연금은 표심을 앞세운 공무원노조에 휘둘려 ‘무늬만 개혁’이다. 노동계 움직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원천 봉쇄를 외치고 있는 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골자는 정년 연장과 병행해 일정 나이가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고, 업황에 따른 탄력적 구조조정 등이 가능토록 취업 규칙을 바꾸자는 것이다. 노동시장 여건을 생산성과 효율성에 부합토록 해 제품·산업·국가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게 궁극적 지향점이다.

닮은꼴 vs 다른 꼴

내년 총선을 겨냥하고 정치권이 언급하기 시작한 선거 전략은 노동계에 든든한 후원군이 될 조짐이다. ‘조금만 버티면 승리한다’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파업은 벌써 예고됐다. 민주노총은 4월에 이어 15일 2차 총파업에 나서 주야 4시간 이상씩 일손을 놓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한국노총도 민주노총과 손잡고 22일 제조 부문 총파업에 들어가겠다며 단위노조에 투쟁 지침까지 보내고 있다.

한국은 1998년 금모으기 운동으로 IMF 사태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원금에 높은 이자까지 꼬박 다 갚았다. 3차 구제금융까지 요청한 그리스와는 다른 꼴이다. 지금은 사정이 여의치 않다. 각고의 노력과 희생이 없으면 ‘닮은꼴’이 되기 십상이다. 수출 한국호의 대표주자 격인 스마트폰은 중저가 중국산에 밀리고 있다. 국내 자동차업계는 구조조정 효과에 환율까지 등에 업은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내주고 있다. 수출주도형 국가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다면 결론은 뻔하다. 닮은꼴과 다른 꼴, 어느 것을 더 도드라지게 만드느냐는 우리의 몫이다.

박기호 선임기자·좋은일터연구소장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