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중소기업의 '잔인한 6월'
경인 지역의 한 주물업체 사무직 임직원들은 최근 자발적으로 임금의 절반을 반납했다. 조선 불황으로 수주가 격감해 적자가 늘고 가동률이 50%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올여름 휴가를 20일씩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수도권의 한 인쇄업체 근로자들은 하루 여덟 시간 정규 근무시간 중 두 시간 정도는 쉰다. 일감이 없어서다. 오후 4시가 되면 인쇄기계들이 작동을 멈춘다. 이 회사의 C사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여파로 각종 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행사를 알리는 인쇄물이 격감했다”고 설명했다.

반월 소재 도금업체의 한 사장은 한 달째 해외출장 중이다. 휴대폰업체로부터의 수주가 줄어 가동률이 겨우 60% 선에 그치자 밖으로 뛰고 있다.

일감없어 위기의식 팽배

중소 제조업체들이 ‘잔인한 6월’을 맞고 있다. 이들은 내수 부진에 이어 수출마저 위축되자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 도금 열처리 주물 단조 등 뿌리산업에 국한된 게 아니다. 전자 및 기계부품 인쇄 등 거의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중소기업 현안이 얼마 전까지는 모기업의 단가 인상이었지만 최근엔 ‘일감 확보’로 바뀌었다. 그만큼 수주 가뭄은 극심하고 현실은 절박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중소 제조업체 가동률은 지난 4월 72.5%였다. 1년 전에 비해 0.4%포인트 떨어졌다. 정상조업 업체 비율도 45.5%로 1년 전에 비해 0.7%포인트 낮아졌다. 이는 평균가동률이 80%를 넘는 업체의 비율을 뜻한다. 절반이 넘는 업체들이 정상가동을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유럽과 일본 등 해외 경기침체, 중국의 성장 둔화, 엔저 역풍, 내수 부진 장기화, 메르스 사태 등이 꼽힌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나만의 제품’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중소제조업 대책 다시 짜야

중소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는 연구개발(R&D) 인력 양성 등 사회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선 국가 차원의 R&D가 중소기업 수요와 맞물려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국책연구기관의 개편을 추진 중이지만 이는 중소 제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좀 더 과감하고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제조업 혁신도 마찬가지다. 독일 일본 미국 등 선진국들이 제조업 강화를 내세우며 사물인터넷(IoT) 기술과 3차원(3D)프린터 등을 접목한 제조업 혁신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이런 로드맵을 세웠지만 정작 현장의 중소기업인 상당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인력 문제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생산 현장은 외국인이 없으면 돌아가질 않는다. 이들은 몇 년 일한 뒤 귀국할 사람들이다. 장인의 대가 끊겨 가고 있다.

이제 중소 제조업 대책을 밑바닥부터 다시 짤 때가 됐다. 중소기업청에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여러 부처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제조업 혁명이 벌어지고 자유무역협정(FTA)이 확대되며 중국이 턱밑까지 추격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밀리면 영원한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 시간이 별로 없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