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규제법 지킨게 꼼수라는 야당
술을 많이 마신 운전자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대리운전 기사에게 1만~2만원 정도 지급하고 운전대를 맡기거나, 한숨 자고 술이 깬 뒤 운전하는 것이다.

후자를 선택한 운전자가 음주 단속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03%를 기록했다고 해서 ‘꼼수를 썼다’고 비난할 사람은 없다. 도로교통법은 운전자가 술을 마셨든 안 마셨든 혈중알코올농도 0.05% 미만인 상태에서 차를 몰면 문제가 없다고 규정한다.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 소속으로 오너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이고 연간 계열사 거래액이 200억원 이상인 상장사들은 지난 2월부터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받고 있다. 상장사들 역시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연 200억원 이상 계열사 간 거래를 하지 않거나 오너 일가 지분율을 30% 미만으로 낮춰 부당이익 소지를 없애는 것이다. 운전자의 선택처럼 대기업 계열 상장사들도 경영에 가장 유리한 방법을 자유롭게 선택하면 그만이다.

최근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오너 일가 지분율을 30% 미만으로 낮춘 대기업 계열사들에 대해 “꼼수를 써서 총수 일가 지분율을 인위적으로 낮췄다”며 보도자료를 통해 비판했다.

“공정거래법에 구멍이 뚫렸다”고도 주장했다. 음주운전 처벌을 피하려고 몇 시간을 잔 운전자처럼 형사처벌을 안 받으려고 지분율을 낮춘 대기업 계열사들을 싸잡아서 매도하는 것은 옳은 것일까.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취지는 오너 일가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해 큰 이익을 내게 한 뒤 오너 일가가 배당금 등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낮아졌다는 것은 배당을 통해 오너 일가로 들어가는 돈도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지분율 30% 이상 상장사’라는 규제 기준은 사회적 합의로 정해졌다. 국회의원들이 ‘오너 일가 지분율 30% 미만 상장사는 계열사 간 자유롭게 거래를 해도 상관없다’고 입법 과정에서 동의한 것이다. 대기업들은 규제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황정수 경제부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