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빅데이터산업 고도화, 개인정보보호 규제완화 필요하다
미래소설가 필립 딕이 2054년을 묘사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발표한 1956년 당시에는 범죄가 일어나기도 전에 범인을 체포하는 장면은 그저 소설 속 이야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행동은 물론 생각까지도 데이터로 저장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소설은 현실이 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경찰이 빅데이터를 활용한 범죄 예측 시스템을 가동했고, 영국 런던 경찰도 시범 적용 중이다.

웨어러블 기기와 사물인터넷(IoT)의 등장으로 식탁이 내게 필요한 칼로리를 계산해 식단을 말해주고, 냉장고가 필요한 식료품을 주문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뉴스의 맥] 빅데이터산업 고도화, 개인정보보호 규제완화 필요하다
사람과 사물이 데이터로 연결되는 ‘빅데이터’ 환경은 산업혁명기의 석탄처럼 데이터가 미래 산업을 발전시킬 ‘자원’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준다.

주요국 정부가 공공정보 개방과 활용을 통한 가치 창출을 국가 전략으로 내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 정부의 ‘오픈데이터 정책’은 공공 데이터 활용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미국 백악관이 주도하는 ‘빅데이터 연구개발계획’도 원천기술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업 사례는 다양하다. 상품 구매패턴 분석으로 부모보다 먼저 딸의 임신 사실을 예측해 출산용품 할인쿠폰을 보낸 할인점 사례는 이 분야에선 고전에 속한다. 백색가전의 대명사 제너럴일렉트릭(GE)은 항공기 엔진에 부착한 센서로 수집한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고장을 방지하고 연료 효율을 높인다. 발명왕 에디슨이 만든 제조회사가 데이터 분석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정부 데이터를 활용한 성공 사례도 많다. 미국 주택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온라인 부동산 장터 서비스를 시작한 벤처기업 질로우는 시가총액이 30억달러에 달한다. 정부의 작물 재배와 날씨, 토양 데이터를 활용해 농업 정보를 제공하던 벤처기업 클라이미트(Climate Corp)를 몬산토는 9억3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영국 위성방송사 BSkyB는 데이터 분석 조직을 만들고 시청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광고를 개발했다. 신혼부부 가정에는 스포츠카를, 대가족에게는 승합차를 소개하는 서로 다른 광고를 같은 시간에 방송한다.

韓, 2020년 9억달러 장밋빛 시장

리서치 회사 위키본은 세계 빅데이터 시장 규모가 2014년 285억달러에서 2017년에는 501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빅데이터 시장 규모도 2015년 2억6300만달러에서 2020년에는 8억9400만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예측했다.

빅데이터의 미래는 장밋빛이지만 국내 경쟁 상황은 녹록지 않다. 빅데이터 인프라와 처리, 분석 기술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 IT 서비스 업체들과 통신사, 일부 중소 소프트웨어(SW) 기업의 경쟁력은 취약하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공공데이터 개방도 양질의 데이터가 아직 부족하고, 데이터 구조가 서로 달라 활용에 제약이 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빅데이터산업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개인정보보호 틀 바꿔야

첫째, 데이터 기반 사회로 이행이라는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할 국가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정보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컴퓨터, 인터넷 교육을 학교 교육과 연계한 것처럼 데이터에 기반을 둔 의사결정 문화를 확산하려면 컴퓨팅과 데이터 분석 능력 강화를 위한 교육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영국이 ‘데이터 역량 강화 전략’을 선포하고 초·중등 교육 과정의 개선, 전문 교사 양성 등 교육 개혁과 함께 빅데이터산업 촉진의 핵심 역할을 담당할 공무원의 분석 능력 강화를 강조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 데이터산업 생태계의 성공은 고품질 데이터 유통 활성화에 있다. 정부 목표인 데이터 개방 순위 세계 5위를 달성하려면 국세, 교통, 부동산, 기상, 의료 등 활용도가 높은 정부 데이터를 과감히 개방해야 한다. 데이터 개방은 데이터 보안, 암호화, 비식별화 등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기술 개발과 연계돼야 한다. 미국은 프라이버시 관련 기술개발을 위해 국립과학재단, 국립보건원, 국토안보부 등을 중심으로 매년 7000만달러 이상의 예산을 집행한다.

셋째, 프라이버시 보호 관련 법제 개선이 필요하다. 프라이버시를 기본 인권으로 인식하고 강력한 개인정보보호 정책을 유지하던 유럽은 최근 데이터 활용을 위해 규제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프라이버시를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간주하는 미국은 개인 데이터 유통의 ‘투명성 부족’에 주목하고 데이터 활용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면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는 정부 방침인 ‘빅데이터:기회 포착과 가치 보호’를 발표했다. 개인정보보호 규제 강도가 높은 한국은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개인정보의 포괄 범위 완화는 물론 개인정보의 유통과 활용에 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는 논의가 필요하다.

넷째, 공공데이터 활용 촉진을 위한 기업 지원책이 필요하다. 정부의 오픈데이터 정책은 산업 활용도 저조, 양질의 데이터 부족, 낮은 접근성 등 정책 초기 단계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려면 중소기업,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오픈데이터를 활용해 상품과 서비스 개발을 촉진하는 영국의 ‘오픈데이터 챌린지’나 비즈니스 아이디어 개발에 자금을 지원하는 ‘혁신 바우처’ 정책은 의미가 있다.

예측능력은 국가경쟁력 척도

다섯째, 전문 인력 양성은 빅데이터산업 촉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이슈다. 정부 기관과 대학, 연구소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전문가를 양성하는 미국의 빅데이터 연구개발계획은 참고할 만하다. 핵심 역량인 데이터 과학자 양성과 함께 실무 전문가, 예비전문가(학생)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산업 초기의 특징인 작은 시장 규모, 원천기술의 부족,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문화의 취약 등을 감안하면 정부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은행이 ‘경제성장을 위한 오픈데이터’ 보고서에서 정부가 단지 데이터 공급자에 그치지 말고 민간 데이터 공개를 이끄는 선도자, 데이터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촉매자와 활용자의 역할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저성장과 고령화, 글로벌 경쟁이 특징인 대변혁의 시대에 데이터 공유와 활용을 통한 정확한 예측 능력은 국가 경쟁력의 척도다. 정보화 시대를 선도한 한국이 데이터 시대에도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정용찬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ICT통계분석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