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의 데스크 시각] '3류'도 못되는 정치
지난주 여야 대표들이 국회 연설을 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법인세 인상”을 거론했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부자 감세(減稅) 때문에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이 줄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연설을 들으면서 가슴이 꽉 막히는 답답함을 느꼈다. 한국의 대표 정치인들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 것인지, 국민의 지적 수준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법인세는 ‘부자 증세’하고는 거리가 먼 세금이다. 법인세율 인상으로 세금이 늘어나는 만큼 기업주(오너)는 배당소득세를 덜 낸다. 이중과세방지 원칙이다. 예컨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사람은 ‘개인사업자’로 하든 ‘법인(기업)’으로 하든 세금 부담이 같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기업을 설립하겠는가.(구체적인 내용은 인터넷에서 ‘그로스업’이나 ‘배당소득 이중과세 조정’을 검색하면 알 수 있다)

법인세 ‘부자증세’와 관계 없다

법인세가 늘면 정작 손해를 보는 계층은 소액주주들이다. 대주주와 달리 이들에게는 ‘분리과세’가 적용되기 때문에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

법인세는 조세저항이 없어 걷기가 쉬운 세금인데도 많은 국가들이 세율을 계속 낮춰왔다. 경제활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한국도 여야 가릴 것 없이 법인세를 계속 낮춰왔다. 김대중 정부 때 법인세 최고세율이 28%에서 27%로 낮아졌다. 노무현 정부 때 25%로 다시 인하됐다.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율을 22%로 낮춘 것만 갖고 ‘부자 감세’ 공세를 펴는 것은 옳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

문 대표는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상위 10% 계층의 실질소득은 39.3% 증가한 반면 하위 10%는 6.2% 감소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서민들을 위한 제도”라며 도입했던 것들은 다 뭔가.

2000년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된 해다. 이 제도가 ‘빈곤층의 일할 의욕’을 꺾어 소득을 떨어뜨린 것은 아닌가.

‘서민이미지’만 추구하는 정치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때 인상률이 연평균 11%에 가까웠다”는 최저임금은 또 뭔가. 빈곤층의 실질소득을 늘리는 데 아무런 역할을 못했거나, 오히려 떨어뜨린 것 아닌가.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이 생산성이 낮은 취약계층에는 독(毒)이었나.

비정규직과 파견직을 보호하는 조치들은 어땠을까. 정부와 공기업, 민간 대기업의 비정규직이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바뀌면서 ‘배운 게 없고 기술도 없는 사람들’의 일할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닌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성찰은 하지 않고 “재벌들이 서민들 돈을 다 빼앗아 갔다”고 말하니, 정치란 참 하기 쉬운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서민들의 실제 삶이 어찌되든 ‘서민들을 위한다는 이미지’만 챙기면 되는 건가.

서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많은 사람들의 직관(直觀)을 거스르는 일조차 용기 있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복지제도 도입에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떤 효과와 부작용을 낳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정치가 삼류도 못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현승윤 편집국 부국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