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원의 데스크 시각] 기업 외면한 '경제활성화'
요즘 경제 정책은 주로 수요에 초점을 두고 있다. 기준 금리를 낮춰 통화공급을 늘리고 재정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하는 단기 대책들이다. 실수요자 중심으로 주택 거래가 살아나는 등 정책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심리는 좀체 살아나지 않고 있다. 작년 12월 이후 4개월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를 기록한 게 이를 방증한다. 자신감을 상실한 기업은 채용에 소극적이고 노후 불안이 커진 국민들은 한사코 소비를 꺼린다.

정 부 주도 부양책만으로 경제를 살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이유다. 돌파구는 ‘혁신의 주역’인 기업에서 찾아야 한다. 굳이 공급사이드 경제학을 운운하지 않아도 기업이 창의적 미래 기술을 활용해 혁신 제품을 내놓으면 부(富)는 물론 일자리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정부 부양책만으론 한계

애플이 2007년 내놓은 아이폰이 대표적 사례다. 휴대전화에 아이팟과 모바일 인터넷 기능을 합친 융합 제품은 엄청난 신수요를 유발하며 세상을 바꿔놓았다. 관련 산업 수요 유발까지 포함하면 세계적으로 한 해 수천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싼 금리 덕분에 아이폰을 산 게 아니었다. 편리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시장에서 작용한 결과였다.

하지만 스마트폰처럼 강력한 융합 제품이 절로 나오는 게 아니다. 창의적 기업가 정신이 꽃필 수 있는 토양(시장)이 있어야 한다. 정부는 미래 혁신 기술이 산업으로 클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장 기 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 정부가 2000년대 들어 민간 산업 지원에 적극 나선 것도 이런 취지에서다. 민간에서 아이디어를 내면 정책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각 지방의 클러스터가 그렇게 육성됐다. 재생의학을 신속하게 실용화할 수 있도록 관련 육성법을 제정해 시행(작년 11월)에 들어간 것도 기업들의 요구를 반영한 조치였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 기업이 강해진 것은 아베노믹스 덕분이라기보다는 민간 기업이 정부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아 로봇 재생의학 차세대 배터리 등 미래 기술에 일관성 있게 투자한 결과”라고 말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절박해진 일본이 기업 재생(再生)으로 돌파구 찾기에 나섰고 마침내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공무원이 기업혁신 막아

강해진 일본 기업(본지 3월30일자 A1, 4, 5면 기획시리즈 참조)을 보면서 한국 기업들은 불안하고 초조하다. 경제민주화 광풍으로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지지부진한 노동개혁에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

대 통령이 1년 넘게 규제철폐를 외쳐도 공무원들은 꿈쩍하지 않는다. ‘기업 민원을 들어주면 감사원의 적법성 감사를 받게 된다’며 몸 사리기 바쁘다. 무탈한 삶이 생의 좌표가 된 그들이다. 산업계에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공무원들에게서 뭘 바라겠느냐는 냉소가 만연하다.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어떻게 나왔으며 급진적인 탄소배출권 제도가 왜 도입됐겠는가.

기 업인들이 “정부는 차라리 일을 하지 말라”는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의 지적에 공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가볍게 뛸 수 있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혁신 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미래지향적 산업정책이 나올 수 있다.

이익원 부국장 겸 IT과학부장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