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수능 한파?
하필 수능일에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아침 기온이 서울 영하 2도, 춘천·충주 영하 5도 등으로 올가을 최저다. ‘8년 만의 입시 한파’라는 소리에 몸이 더 움츠러든다. 해마다 이맘때면 ‘수능 한파’라는 말이 단골 수식어로 등장한다. 그러나 늘 수능일이 추웠던 건 아니다. 서울의 경우 최근 10년 동안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해는 2006년밖에 없었다. 지난해와 2011년, 2008년에는 낮 최고기온이 15도를 넘었다. ‘8년 만의 한파’라는 표현도 뒤집어보면 그동안 따뜻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수능일엔 입버릇처럼 추위를 걱정한다. 왜 그럴까. 일단은 계절적 영향 때문이다. 11월은 찬 대륙 고기압의 영향권에 드는 시기여서 갑자기 쌀쌀해졌다고 느낀다. 예전 대입 예비고사(12월)와 본고사(1월) 때는 더했다. 대입학력고사(12월)로 이름이 바뀐 뒤에도 그랬다. 수능시험으로 바뀐 뒤엔 11월에 시험을 보는데도 춥다고 느낀다. 여기에는 수험생의 심리적인 요인까지 겹쳐 있다. 옛날 ‘한파의 추억’이 워낙 강한 탓도 있다. 교문 밖에서 종일 기다리는 가족들은 더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또 하나는 언론의 호들갑이다. 앞뒤 따지지도 않고 ‘입시 한파’라는 표현을 마구 갖다 쓴다. 검증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추정보도, 예단보도로 몰아간다. 이도저도 아니면 ‘올해는 수능 한파 없다’라는 식으로라도 내지르고 본다. 인터넷 매체들은 이를 또 앞다퉈 퍼나른다. 이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입시 한파에 대한 선입관을 덧씌워온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확증편향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확증편향은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것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상인데, 정보의 객관성과는 상관없다. 가령 장 보러 나온 주부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면 열에 아홉이 “물가가 너무 올라 살 게 없다”고 말한다. ‘고물가의 아픈 추억’ 때문이다. 일본식 장기불황을 우려하는 저물가 시대가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도 그렇다.

최근엔 좀 덜해졌지만 택시 기사들의 기름값 타령도 고유가 공포에 오래 시달려온 탓이다. 상투적으로 쓰는 ‘자고나면 치솟는 서민 전셋값’ 또한 마찬가지. 강남 3구에 사는 사람들의 전셋값이 강북 집값의 두 배나 되는데도 ‘서민 전셋값 걱정’이라고 한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의 덫에 걸려 정부는 설익은 대책을 또 쏟아낸다. 어쨌거나 오늘은 8년 만의 추위라니 옷은 두껍게 챙겨 입고 나서야 할 것 같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