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거위의 배 가르자는 유보금 과세론
짧은 우화는 종종 사태의 정곡을 찌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다는 노부부 이야기 말이다. 기업들이 필요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세금을 매겨 토해 내도록 만들자는 주장은 괴이쩍다. 세금도 많이 걷고(2조원 정도다), 배당과 임금으로 강제로 쓰게 하고(약 13조원이다), 소비도 진작한다는 논리다. 아름다운 이야기일수록 거짓말이 많다. 미국과 대만에도 유보과세 제도가 있으니 우리라고 못할 것이 없다는 배짱도 그렇다. 미국은 실질적으로 비공개 기업에 대해서만 이 제도가 운영된다. 소수지배 기업의 배당 소득세 포탈을 막자는 취지일 뿐, 투자장려나 소비진작 임금인상이라니 턱도 없다.

자, 문제의 2조원부터 따져보자. 2012년 자료로 사내유보가 762조원에 달하고 여기에 법정준비금 등 적정유보를 제외한 필요준비금률(50%로 본다고 한다)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15%의 세율로 과세하면 2조원을 걷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잠깐! 여기서 수수께끼 하나. 전깃줄에 참새가 다섯 마리 앉아 있는데 한 마리를 총으로 쏘면 몇 마리가 남나? “네 마리가 남을 것”이라고 말하면 세수 2조원론에 찬성하게 된다. 그러나 정답은 “다 날아가고 없다”이다. 그래도 참새가 날아간 효과는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 다음 주장이다.

맞다. 기업들이 유보를 줄이면서 2년차부터는 걷을 세금도 줄어든다. 그렇더라도 배당이나 임금을 크게 올리는 방법으로 약 13조원을 토해 내게 한 그만큼 근로자를 살찌우고 주주를 살찌우는 효과는 있다는 것이다. 일응 말이 된다. 그런데 이런 신자유주의적 주장도 없지 싶다. 좌파들의 성실성을 의심하게 되는 것도 이런 부분에서다. 유보과세를 찬성하는 좌익성향의 논변들은 한 달 임금이 200만원도 안되는 근로자를 위해서라도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쓰고 있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유보 세금을 물어야 할 정도의 기업은 삼성전자 등 우량기업 극소수다. 억대 연봉 삼성전자 직원들에게 급여를 더 주라면서 200만원 근로자를 핑계대면 곤란하지 않나. 소득 양극화의 상단 부위에 급여를 더주고, 상위 주식보유 계층에 배당을 더 주자는 주장을 가난한 근로자를 내세워 정당화한다는 것은 죄의식마저 수반한다. 오로지 ‘기업 벌주는 일이기 때문에 찬성!’이라면 차라리 솔직하다. 대기업 2세 등 상속세 걱정이 많은 피상속인들에게 세금 낼 돈을 마련해주자는 온정이라면 또 어떨까.

배당을 올려 증시 활황을 유도하자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1회에 그치는 효과다. 그리고 엄밀하게 말하면 장기투자자에게는 오히려 불리하다. 단기적, 투기적, 1회적 주가 상승이다. 그래서 유보과세 뉴스가 나가자 모모하는 해외 투기꾼들부터 만세를 불렀다지 않은가. 소비확대와 경기부양을 유도한다는 주장은 또 어떤가. 유보야말로 은행예금이 되고 자영업자 누군가에겐 피 같은 대출 재원이 된다. 차라리 개인 저축분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개인과 비영리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은 무려 2641조원이다. 이 유보금에 세금을 때리자. 자산 불평등도 해소하는 일거양득이다. 자산축적을 없애면 불평등도 사라진다. 개인이 무엇을 한다고 그많은 돈을 유보하면서 돈줄을 마르게 한단 말인가. 집이나 땅을 사면 청문회에서도 투기꾼으로 보는 판국이다. 그렇게 거위들의 배를 모조리 가르자.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들이 왜 유보를 많이 쌓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1991년 이후 10년을 지속하던 유보과세가 폐지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공격적인 경영권 침탈이 많아진 것이 직격탄이다. 자사주 아니고는 경영권을 방어할 적절한 방법이 도저히 없었기 때문에 상속세 재원으로 쓸 배당금 수입까지 포기하면서 회사에 돈을 쌓고 있는 것이다. 배당이 싫어서 배당금이 적어진 것이 아니다. 사내 유보에 세금을 매기려면 대신 경영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거위의 배를 가르자는 어리석음에 불과하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