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내수 진작? 뭘로 할 건가
2012년 초 일본에 갔을 때 자주 들은 얘기가 “MB를 수입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선 원전 수주 등 경제세일즈 대통령으로 각인된 탓이다. MB 5년간 6명의 총리가 바뀐 일본이다. 그런데 요즘은 영 딴판이다. 그해 11월 아베 총리 집권 이후 6분기 연속 성장세다. 엔저와 세 개의 화살(통화완화, 재정확대, 성장전략) 덕이다. 지난 1분기엔 6.7%(연율 기준) 깜짝 성장했다.

종종 이웃들의 속을 뒤집어놓는 아베지만 경제운용은 영악하다는 느낌을 준다. 금융자산의 70%를 틀어쥔 노인들을 겨냥한 상속세 강화, 증여세 완화가 그렇다. 재산을 미리 증여해 자식·손자들이 쓰게 하라는 독촉이다. 아베를 수입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경제 회생의 치어리더를 자처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새 경제팀 정책수단 총동원령

최경환 2기 경제팀이 출범한다. 최 부총리는 “경제 회복에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겠다”며 자못 비장하다.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의 골자는 내수 활성화다. 부동산 규제완화, 추경, 금리인하, 규제개혁을 총망라할 태세다. 환율 쇼크도 내수진작으로 푼다는 복안이다. 수년간 금기어로 홀대했던 ‘성장’을 내건 것 자체가 반갑다.

내수부진 원인으로 흔히 부동산 침체를 꼽고, 일부 언론은 노동소득분배율 하락을 든다. 하지만 최근 3년간 평균 3% 성장에 그쳤고, 4년 뒤엔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14%)라는 사실은 잊은 듯하다. 근본 원인은 저성장과 고령화로 귀결된다. 물이 빠지면 온갖 오물이 드러나듯 가계부채, 청년실업, 자영업 문제는 그 횡단면일 뿐이다.

당장 LTV(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를 풀면 부동산이 살아날까? 집값 하락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구조적인 공급과잉이 예상되면 집을 안 사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노동소득분배율 하락도 임금이 덜 올라서가 아니다. 일자리 부족과 비정규직, 자영업 몰락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면 사내유보 과세, 최저임금 인상 같은 엉뚱한 처방이 나온다.

13억 중국을 내수시장 삼아야

지난 3년의 경제민주화 광풍도 내수 침체와 결코 무관치 않다. 성공하고 성장하면 규제 철퇴를 때리니 소비시장에 혁신이 사라졌다. 유니클로, 아이폰처럼 소비자의 눈길을 확 잡아끌 게 없는데 지갑을 열겠나. 내수 자체가 붕괴해도 여전히 경제민주화 타령인 국회의원들을 보면 아직 한참 멀었다.

5000만 인구가 내수로 먹고살긴 어렵다. 내수가 부진할수록 역설적으로 수출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13억 중국에 인접한 것은 천혜의 입지다. 한·중 FTA도 농업 타격이 아니라 중국을 내수시장화하는 관점에서 접근할 때다. 새벽 비행기로 공수된 한국산 신선 먹거리를 중국인 식탁에 올린다고 상상해 보라.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1인당 소득 1만달러 이상인 지역 인구만도 2억6000만명이다. 고소득 지역인 푸젠성(福建省)이 지난해 한국관광 금지를 검토해 난리가 났다. 기껏 보내봐야 논밭과 상점만 보고 온다는 이유였다. 롯데 등 국내 관광·유통업계가 대규모 진사사절단을 보내 간신히 무마했다는 후문이다. 중국 관광객을 감동시키면 내수 진작이 따로 필요 없을 텐데.

우리 경제는 불균형보다 더 심각한 ‘동반몰락’의 위기다.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이익집단에 휘둘리고, 어리석은 명분론에 함몰돼선 답이 없다. 시간도 없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