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뿌리기술은 우리 산업의 도약대
‘뿌리기술’이라고 하면 대장간에서 쇠를 달궈서 망치로 탕탕 내려치거나 구석에서 용접마스크를 쓰고 앉아서 불꽃을 튀기면서 금속을 이어붙이는, 고도의 기술은 필요 없고 몇 주만 배우면 쉽게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정도의 기술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뿌리기술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생각이다.

최신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 뒷부분 배터리 케이스를 열면 현미경으로 봐야만 나사라고 알 수 있는, 직경 1mm에 나사홈 간격 0.3mm인 초소형 나사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기존의 깎아서 만드는 방식이 아닌 찍어내는(압출) 방식으로 생산되는 소성가공 기술의 결과물이다. 요즘 이슈가 되는 웨어러블 전자제품, 휘어지는 디스플레이가 제품화되기 위한 관건 중 하나도 용접접합이라는 뿌리기술이다. 구겨지고 휘어지는 표면에다 초미세 전자부품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결합시키는 기술은 제품의 상업화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깊이 수km의 심해저자원 개발을 위해서도 고도의 용접기술 개발은 필수다. 12m 길이의 파이프를 수직으로 해저에 지속적으로 투입하면서 실시간으로 용접해야 하는데, 신속한 용접시간과 높은 수압에서도 용접부위에 크랙(crack)이 발생하지 않는 용접기술이 바탕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소위 도금이라고 불리는 표면처리 뿌리기술도 단순히 금속 등의 미관을 아름답게 하고 내구성을 개선시키는 기능 이외에 추가적인 기능을 부여하는 기술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도로 발달된 동물 후각 기관의 섬모 구조를 표면처리 기술에 응용해 스마트폰에 활용하면 유해가스에 대한 실시간 센서기능을 스마트폰이 수행할 수 있는데, 현재 개발 중에 있다. 시장 판도를 뒤흔들 신소재 및 부품을 개발하더라도, 새로운 소재·부품을 제품에 활용하기 위한 용접, 주조, 소성가공, 열처리 등의 공정기술이 함께 개발되지 않으면 소재·부품의 개발은 무용지물이 된다. 즉 새로운 소재·부품의 개발은 이에 맞는 뿌리기술 개발이 뒷받침돼야만 활용이 가능하다.

뿌리기술은 고도의 기술개발이 필요없는 저급한 분야가 아니다. 임계성능 극복을 위해 최첨단 기술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뿌리기술 기업들 간에 치열한 연구개발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영역이다. 첨단 뿌리기술의 뒷받침 없이는 우리나라의 먹거리산업인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역으로 우리나라의 높은 제조업 수준은 첨단 뿌리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는 이처럼 뿌리기술의 첨단화와 고도화가 긴요하고 시급하다는 인식 하에 2011년에 관련 법률을 제정했고 기본계획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우리 주력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첨단뿌리기술을 발굴하고 이러한 기술을 보유한 중소 뿌리기술 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우리 뿌리기술 기업들도 청결한 작업환경으로 개선하고 직원들의 근로복지 향상에 노력하면서 첨단 뿌리기술 개발에 끊임없이 노력하기를 부탁하고 싶다. 정부는 기술력이 있고 기업가정신이 높은 뿌리기술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일부 부족한 부분에 대해 마중물 역할을 하며, 그 나머지는 기업에서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정부와 기업 간의 적절한 역할분담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GM, 도요타 등 세계적 제조업체들이 수소문해 찾아와 첨단 뿌리기술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하는 뿌리기술 기업, 숨어있어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는 히든 챔피언으로서의 뿌리기술 기업, 우리가 함께 꿈꾸는 이러한 뿌리기술 기업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윤상직 <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