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지금은 '사이버 비상시국'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에서 정보기술(IT) 분야 기업인 6명과 만났다. 이 모임은 오바마의 초청 형태로 갑자기 추진됐고,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와 에릭 슈밋 구글 회장도 참석했다. 이날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적인 인터넷 감청에 대한 기업인들의 불만을 듣는 자리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는 저커버그와 오바마 간 전화통화에서 비롯됐다. 저커버그는 최근 오바마 대통령한테 전화를 걸어 무차별적인 인터넷 감청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저커버그뿐만 아니다. 지난해 NSA 출신 에드워드 스노든이 ‘프리즘’이라는 NSA의 감청 프로젝트를 폭로한 후 관련 기업들이 일제히 반발했고 구글 등은 투명성을 약속해 달라며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네트워크는 최고, 보안은 최악

오바마 대통령이 기업인들에게 어떤 약속을 했든 인터넷에 대한 신뢰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미국 정보당국이 페이스북이나 구글 등이 보유하고 있는 사용자들의 글, 이메일 등을 영장 없이도 감청할 수 있다면 세계 어느 나라든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는 NSA가 중국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의 서버에 침투했다는 추가 폭로가 나오면서 중국 정부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물론 인터넷을 감청하는 게 NSA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은 끊임없이 중국 해커들의 무차별적인 해킹 공격을 비난하곤 했다. 전문가들은 냉전이 끝난 후 ‘사이버 냉전’이 시작됐다는 보고서를 냈고, 보안업체들은 연중무휴로 ‘사이버 전쟁’이 진행 중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신용카드 3사와 KT에서 사실상 전 국민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보안 사고’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의미가 다르다. 단순히 추가 유출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문제도 아니고, 2차 피해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그동안 유출된 개인정보, 특히 이번에 유출된 민감한 개인정보가 악용될 경우 ‘사이버 국방’이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고 신용사회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유출된 개인정보 해킹에 악용

최근에 만난 한 해커는 “최악의 보안사고”라며 “이번에 흘러나간 정보만 가지고 있으면 국민 누구든 신용불량자로 만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사이버 비상사태라고 보고 대처해야 한다”고도 했다. 해킹의 출발은 타깃으로 잡은 사람의 개인정보를 입수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해킹을 해 산업기밀도 빼 가고 국가 기밀도 빼 간다.

미국 퓨리서치센터는 최근 ‘2025년 디지털 세상’이라는 전망 보고서를 냈다. 종전 보고서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전문가가 부쩍 늘어났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과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세상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감청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도 문제 중 하나로 꼽혔다.

한때 정부는 “IT 강국”이라고 뻐기곤 했다. 유·무선 인프라가 세계 최고인 것은 맞다. 그러나 보안이 엉망이어서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공인인증서 문제를 거론해 해결 실마리를 제공했다. 사이버 국방에 대해서도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