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저인망식 증세, 한국 경제 퇴락의 전조
문명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강제할 수 없다. 개인 간의 강제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가 강제력으로 이를 다스리며, 개인들이 국가의 강제력을 허용하는 이유는 국가가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함으로써 자유를 확대해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라를 잃었을 때 개인들이 독립운동을 하는 이유도 속국에서보다 독립국에서 한결 더 확장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국가의 역할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민들은 세금을 낸다. 이런 범주를 벗어나는 세금은 국가의 존재 이유로부터 멀어지는 것들이다.

작금의 증세 추세는 한국 사회에 좌우 대립이 격화되면서 정치인들이 나라 전체를 인기영합주의에 빠뜨린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소득 공제에서 세액 공제로 바꾼 소득세제 개편이나 전·월세 임대 소득 과세 등은 주로 인기영합주의의 산물인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그 결과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영유아 시설 보조, 노령 연금 등이 대세가 되면서 이른바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매기는 것이 ‘사회적 정의(?)’로 인식되는 형국에 이르게 됐고, 이런 분위기에 눌려 부자들은 저항의 말 한마디 못하는 형편에 처하게 됐다. 이제는 경제 능력을 넘어선 복지 확대는 나라 경제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는 바른말을 하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을 찾아보기도 어렵게 됐다. 작금의 증세 추세는 사실상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거스르기 어려운 명분을 앞세운 새로운 국가주의의 대두를 알리는 신호다.

최근에는 ‘주택 임대차 시장 선진화방안’의 일환으로 전·월세 임대 소득에 대한 과세 방안이 발표됐다. 정부는 임대 주거 형태가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고 있는 시장 변화를 고려한 것이고, 월세의 경우에는 연간 최고 75만원을 세액에서 공제해줌으로써 세입자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였다.

주택의 임대 형태가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현상의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로 인해 전세 보증금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한결 떨어졌기 때문이다. 집주인들이 생각하는 주관적 시간 비용과 시중금리로 보상받을 수 있는 시간 비용이 크게 벌어져 다른 대안을 찾은 게 월세인 것이다.

월세에 매기는 세금은 세입자가 임대자에 비해 월세 변화에 둔감하게 반응할수록(수요가 가격 비탄력적일수록) 세입자가 많이 낸다. 반대의 경우에는 임대자가 많이 낸다. 이는 세금을 누구에게 매기든 마찬가지다. 세금을 누구에게 매기느냐에 따라 납부하는 주체만 달라질 뿐 실제로 내는 세금은 임대자와 세입자가 나눠 부담하게 된다. 각자의 부담 비율을 법으로 정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얼마나 내게 될 것인가는 위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지만, 분명한 사실은 임대자는 물론 세입자도 예전에는 내지 않던 세금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 연간 최고 75만원을 세입자의 세액에서 공제해주는 것은 앞으로 부담하게 될 세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돌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세원을 샅샅이 찾아 세금을 걷더라도 현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반면 계층 간 갈등 증폭, 나라 전체의 건강성 퇴락, 재산 형성 동기 저하, 공(公)의 사(私) 영역 잠식으로 인한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 등으로 서서히 한국 경제의 뿌리를 좀먹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국가의 성립과 함께 창제(創製)되는 권력을 제어할 수 있는 개인은 없다.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곳이 헌법인데, 헌법재판소도 한국의 경제 체제를 ‘사회적 시장경제’로 정의하고 있어 이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정치인은 물론 국민 개개인의 깨달음이 없으면 파국으로 향하는 길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 구제에 초점을 맞춘 복지에서 벗어난 정책은 결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복지 정책의 과감한 재정비와 규제 혁파를 통한 민간 영역의 확대만이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약속할 수 있다.

김영용 < 전남대 경제학 교수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