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어제 의·정협의 결과를 발표했다. 쟁점이 됐던 원격진료는 시범사업 이후로 미루고, 영리 자법인 설립에 대해서는 의협 등이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말이 합의지 복지부가 의협의 요구조건을 다 받아주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의사들의 집단휴진 압박에 정부가 항복한 모양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무슨 의료산업을 선진화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논란을 불렀던 원격진료만 해도 그렇다. 정부가 선입법, 후시범 사업을 철회함에 따라 원격진료의 향배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다음달부터 6개월간 또 시범사업을 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입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모든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도대체 원격진료를 놓고 우리는 언제까지 시범사업만 하겠다는 건가. 1990년대부터 시작된 사업이 아직도 ‘시범’이라는 쳇바퀴만 돌리는 형국이다.

원격진료의 안전성, 유효성 운운하는 것도 이미 말이 안된다. 그간의 시범사업을 통해서 충분히 검증된 것 이상으로 또 무엇이 필요하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나라들은 이미 본 사업을 시작했고 원격진료 시장의 선두주자로 질주하고 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안전성, 유효성의 증거도 없다. 결국 이번 시범사업도 원격진료를 안 하기 위한 시간끌기용이 될 것이 뻔하다. 벌써 의협은 자신들이 시범사업의 기획·구성·시행·평가를 주도하게 됐노라고 선전하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30년째 시범사업만 하게 된다.

영리 자법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의협, 치의사협, 한의사협, 약사협 등 보건의료단체 논의기구를 만들어 영리 자법인을 설립할 때 우려되는 수익의 편법 유출을 막기로 한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린가. 이런 식이면 영리 자법인을 만들 이유가 없다. 투자 개방형 병원도 반대하고, 영리 자법인조차 못 하게 한다면 의료산업에는 아예 투자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 복지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합의를 했는지 어이가 없다. 결국 복지부는 의협과 한통속이라는 얘기밖에 안된다. 의료산업을 혁신하려면 먼저 복지부부터 혁신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