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업'이 빠진 'M&A 활성화'
“규제를 풀어준다니 고맙긴 한데….” 지난 6일 나온 ‘인수합병(M&A) 활성화 방안’에 대해 한 대형 투자은행(IB) 대표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전례 없는 규제 완화”라는 금융위원회의 자평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그는 “아시아에서 한국만큼 기업을 사고팔기 자유로운 나라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말이 과장만은 아닌 게 중국은 산업 보호를 위해 다국적 기업의 자국 업체 인수를 사사건건 반대하고, ‘갈라파고스’의 나라 일본은 기업들이 경영권을 넘기는 일 자체를 꺼린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오비맥주만 해도 올초 다국적 맥주회사인 AB인베브에 약 6조원에 매각됐다. 거래 규모로 아시아 최대다.

이런 상황에서 사모펀드(PEF) 업계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규제까지 풀어주자 오히려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PEF가 경영권을 갖고 있는 기업도 상장시킬 수 있다는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을 사고파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PEF 속성을 감안해 증권거래소는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상장을 막아왔다. 상장을 허용한다고 해도 수요자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대형 PEF 운용사 대표는 “2대 주주로 참여해 기업공개(IPO) 외엔 이익을 실현할 방법이 없는 경우라면 모를까 경영권을 쥐고 있는 사모펀드는 매수자를 구해 팔면 그만이지 구태여 거래소가 요구하는 각종 까다로운 규제를 받아가며 상장시킬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손대지 않아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M&A 종합 세트’를 준비하면서 정부는 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그런데 정작 시장 수요자들 사이에선 번지수를 잘못짚었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정부안 작성에 참여했던 한 연구소 임원조차 “PEF와 함께 M&A 시장 핵심 바이어인 기업들은 경제민주화 관련법으로 꽁꽁 묶어 두고, 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는 원수”라며 다소 원색적인 발언을 했다. 혹여 정부의 M&A 대책이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를 감안해 규제를 앞다퉈 과잉 ‘발굴’한 결과물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규제를 할 때도, 풀 때도 공무원들의 시선은 어찌 그리 멀리 가지 못하는지….

박동휘 증권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