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규제 부작용 외면하는 한국은행
한국경제신문 2월14일자(A1, 17면)에 ‘철 지난 외화대출 규제, 중소기업 두 번 울린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갔다. 2006년을 전후로 값싼 외화대출이 급증하자 외환당국이 신규 외화대출을 전면 금지(시설자금 투자 및 수출입 등에 필요한 자금은 제외)시켰고, 이 때문에 기존 대출자들이 지금까지도 은행 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고발성 기사였다.

신규 대출을 받아 기존 대출금을 갚는 ‘갈아타기’를 금지하는 규제를 은행들이 악용해 대출이자를 임의로 올린다든지, 예금과 보험상품 가입을 강권하는 등 ‘갑(甲)질’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엔화대출을 많이 쓴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컸다. 외환건전성 차원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외화대출 갈아타기’를 허용해 규제의 부작용을 해결해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기사가 나간 뒤 한국은행이 어떤 조치를 준비 중인지 전화를 걸어봤다. 한은 측 반응은 의외였다. 담당자는 “외화대출을 줄여간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 갈아타기를 허용할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규제를 도입할 당시와 상황이 달라졌고, 규제로 인한 예기치 못한 불이익은 줄여주는 게 맞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꺾기 등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기업들이 왜 은행에 항의하거나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기업을 탓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6년이나 된 ‘철 지난’ 규제로 불만의 목소리가 높고, 엔화대출 피해자들이 만든 블로그에만 가도 그런 목소리는 차고 넘친다. 한 기업인은 당국에 신고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은행과의 관계에서 항상 불리한 중소기업들이 거래 은행을 금감원에 신고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아느냐”며 한은 측의 현실성 없는 인식을 질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규제 혁파를 통해 임기 내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의 기반을 다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인들은 그런 중후장대한 장밋빛 청사진을 바라지 않는다. 외화대출 갈아타기 규제 같은 ‘손톱 밑 가시’부터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