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키예프公國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Kiev)는 러시아인들에게 각별한 곳이다. 모든 러시아 도시의 어머니이며 마음의 고향으로 불리기도 한다. 슬라브족이 최초로 세운 도시국가이자 봉건국가가 바로 키예프공국(公國·키예프루시)이다. 882년 정복자 올레그 공에 의해 세워진 키예프는 그야말로 슬라브의 존재와 위상을 세계에 떨친 국가였다. 볼로드미르 대공(980~1015) 치세엔 중동부 유럽 대부분이 키예프공국의 지배 아래 들어갈 만큼 융성했다. 그리스 정교를 러시아와 동슬라브 지역에 수입한 것도 볼로드미르 때였다.

무엇보다 키예프의 정치 시스템은 아주 독특했다. 키예프에는 자유 시민이 많았고 이들은 ‘베체’라는 독특한 정치회의를 운영했다. 이들 시민은 교회 광장이나 시장터에서 베체를 열고 법을 제정하거나 세금을 징수하는 등 주요 현안을 논의하고 결정했다. 물론 공후를 임명하고 해임을 결정하기도 했다. 이를 어기는 공후는 저항을 통해 끌어내렸다.

하지만 1240년 몽고족이 키예프에 쳐들어오면서 키예프공국은 완전히 멸망하고 대신 모스크바공국이 크게 성장한다. 이후 키예프공국은 러시아 변방 지역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우크라이나의 크라이(krai)는 러시아말로 변방이란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키예프인들의 기질은 15세기부터 등장한 카자크를 통해 빛을 발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등장해 남부 유럽까지 광범위하게 활약한 카자크는 소위 자치적 군사공동체였다. 이들 카자크는 17세기 폴란드가 우크라이나를 복속시키려 하자 대(對)폴란드 독립 투쟁을 주도했으며 여러 전쟁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다. 카자크들은 특히 베체의 전통을 이어받아 자유와 민주적 자기 규율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를 합의로 결정하는 민주적 자치를 영위해 왔다.

우크라이나에 민주와 자유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3개월째 계속됐다. 결국 야당이 주도하는 최고의회가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하고 조기 대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물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어떤 액션을 취할지 세계의 관심거리다. 푸틴은 2008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의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는 국가가 아니다”고까지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국가로서 독립한 지 만 23년째다. 베체나 카자크 전통에서 볼 수 있는 자유와 민주를 향한 키예프 정신을 푸틴이 이번에도 쉽게 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