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시간제 일자리 '단상'
우리 동네 대형마트의 판매사원 영숙 언니. 성실하고 꼼꼼한 일솜씨를 지닌 언니는 지난해 희망하던 정규직이 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지난달 회사는 만 55세가 넘은 700여명의 ‘언니’들을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하루 8시간이던 근로시간은 5시간으로 줄었고, 100만원 남짓하던 월급은 반 토막이 났다. 정규직의 꿈은 일장춘몽이 돼버렸다.

회사는 정부의 ‘시간 선택제 일자리 사업’과 관계없다고 말하지만, 대형마트 현장에서 단번에 수백명을 시간제로 바꾼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시간 선택제 일자리’는 2017년까지 고용률 70%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사업이다. 정부와 공공기관 중심으로 1만여명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간제 일자리가 “자기 필요에 따라 풀타임이나 파트타임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차별받지 않는 반듯한 일자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며칠 전 정부가 발표한 ‘시간제 공무원’은 대통령 말과는 달리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했다. 안전행정부 담당자는 ‘시간제 공무원은 풀타임 공무원 시험에 다시 합격하지 않는 한 풀타임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제 우리 일자리 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시간제 일자리로 3분화 될 위기에 처했다. 이렇게 쌓은 ‘고용률 70% 금자탑’이라면, 과연 이것은 누구를 위한 영광이 될까.

최근 국제노동기구(ILO)는 중산층과 서민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주는 ‘소득주도 성장’을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사회 전체의 소비능력이 증가돼 내수가 진작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선순환이 ‘소득주도 성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 선택제 일자리’가 아니라, 비정규직 감축을 통한 고용의 질 개선, 장시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최저임금 인상 등이 필요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게 이는 모두 당시 박근혜 후보의 대선공약이었다.

올해 195억원의 예산이 시간제 일자리 사업에 책정됐다. 이 예산이 많은 여성의 임금을 반 토막 내는 데 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바로잡아야 할 ‘비정상’이다.

김현미 < 민주당 국회의원 hyunmeek@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