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여상 졸업생의 사다리
‘초교 4학년 때 갑자기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가난한 집안 살림 형편 때문에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상을 졸업했어요. 여상 졸업 후 취직해 주경야독으로 틈틈이 학사 고시를 통과했고, 법조인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끝에 드디어 제5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40대 초반 어느 여성 변호사의 이야기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살림에 분식집을 했어요. 분식집을 하면서 틈틈이 공부해 10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지요.’ 최고령 합격자이기도 했던 모 구청장의 스토리이다.

2017년 폐지를 앞두고 있는 사법시험과 관련해 세간에서 논쟁이 뜨겁다. 과연, 로스쿨 제도하에서 위의 여성 변호사나 구청장이 법조인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을까? 낮에 로스쿨을 다니는 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고, 적지 않은 학비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좋은 학부와 어린 나이를 선호하는 시스템에서 과연 입학이 가능했을지도 의문이다. 주경야독의 현실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전통적인 사법시험이야말로 희망의 상징이며, 신분과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 온 것이 틀림없다. 최근 모 서울대 명예교수가 과거, 출세의 사다리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조선왕조가 500년 이상 장수한 비결은 지배 엘리트인 관료직을 세습하지 않고, 능력을 존중하는 시험제도인 과거로 부단하게 하층 사회에서 인재를 충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비를 제외한 평민들은 출신 지역을 막론하고 어느 벼슬길에도 제한이 없었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탄력적인 사회를 유지하려 했던 것’이라는 결론이다.

현대 사회는 과거보다 모든 영역에서 진화했으므로, 한 개인이 원하는 목표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려 있어야 하고, 그 과정상의 공정함이 유지돼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건강함이 유지되고,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 사법시험 존치 주장과 관련해 밥그릇 지키기, 기득권 유지라는 반론이 있지만 이는 요즘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 사법시험 존치 주장은 바람직한 제도 또는 공정한 선발 방법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령과 학력을 불문하고 자기가 꿈꾼 곳에 이르게 하는 사다리를 존치시키는 것이 결국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바이다.

위철환 < 대한변호사협회장 welawyer@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