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포인트] '감사인 강제교체'는 실패한 제도
분식회계 논란 때마다 회계감독제도 개편 방안이 제기된다. 이런 논의의 배경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아젠다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하고 있는 점은 회계투명성을 표방한 외국제도들도 전형적인 포퓰리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재논의되고 있는 감사인 강제교체제도를 보자. 2000년대 초 감사인 강제교체제도의 국내 도입 당시 이상했던 점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포장됐던 이 제도를 본격 시행 중인 국가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이 제도 추진을 발표했던 미국이나 유럽연합(EU)도 지금까지 도입 여부를 선뜻 정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제도 도입을 ‘선도적’이라고까지 표현한 바 있다. 감사인 강제교체 도입 후 국내 학술연구들은 이 제도가 감사품질 개선효과는 없고, 감사시장 경쟁을 격화시켜 감사보수의 큰 하락을 초래했다고 보고했다. 10년 만에 이 제도를 폐지한 것은 신중치 못했던 포퓰리즘 모습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감사인 강제교체제도가 또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EU에서는 감사인 강제교체 도입을 포함한 회계감독제도 개편과정을 진행 중이고, 미국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도 논의를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런 움직임에 철퇴가 떨어졌다. 미 하원이 “감사인 강제교체 규정을 금지”하는 회계개혁법(SOX법) 개정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회계감독 근거법인 SOX법을 개정해서, 감사인 강제교체규정의 논의를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이 의결은 상원을 거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면 법률로 시행된다. 그 이후 미국에서는 제도 도입 논의가 중단됐고, EU의 강제교체 법안 추진과정에서도 부정적 의견이 커지고 있다. 영국은 감사인 강제교체 대신 다른 방안(대기업 강제입찰주기 단축)으로 제도개편을 선회했다.

최근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논의에서 이 제도의 재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잘못된 규제가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지만 부작용은 즉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 의회의 초당파적 결의가 인상적인 것은, 포퓰리즘 정책의 중단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문제가 많다고 확인된 방안까지도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은 의회가 나서서 막았는데, 우리는 어떠한가.

이재은 <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