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꼼수 쓸 머리를 공부하는 데 좀 쓰지.” 시험 부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오는 한탄이다. 옆 사람 답을 슬쩍 훔쳐보는 정도야 단순한 커닝이지만, 문제지를 통째로 훔치기 위해 인쇄실 부근에서 밤을 새운다면 이는 곧 범죄다.

10년 전에도 군산의 한 고교 3학년 학생들이 중간고사 시험을 앞두고 인쇄실에 잠입해 시험지를 빼내고 무사히(?) 시험까지 치른 사실이 발각된 적이 있다. 평택의 한 중학교에서는 3학년 반장이 시험지를 빼냈다가 들켜 기말고사가 미뤄지기도 했다. 올해 초엔 검사 임용시험에 합격한 예비 검사가 로스쿨 재학 당시 시험문제지를 빼돌려 높은 학점으로 졸업한 이력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높은 점수를 받고 싶은 학생들의 심리를 이용해 문제지를 팔아먹는 유출범죄도 많았다. 2005년 한 사립고 교장이 1년 동안 전 과목 시험지를 학부모에게 넘겨줬다가 적발됐다. 1992년에는 대학 직원이 대입시험지를 빼내는 바람에 후기대학 전체 시험이 연기되기도 했다.

며칠 전에 터진 한국농어촌공사의 승진시험 문제 유출 사건은 출제기관 직원과 농어촌공사 간부가 조직적으로 공모한 케이스다. 그것도 10년 동안이나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받고 넘겨왔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사례도 많다. 올해 서울의 유명 어학원들이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 문제를 수강생들에게 팔아넘긴 것 때문에 한국에서만 SAT 시험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시차를 이용한 범죄도 있었다. 어학원 강사가 태국에서 SAT 시험지를 빼돌린 뒤 시차 때문에 12시간 뒤에 치러지는 미국의 한인 유학생에게 이메일로 보낸 것이었다.

최첨단 장비를 동원한 수법까지 등장했다. 한 영어 강사가 시험장에서 공인영어시험 토익(TOEIC)과 텝스(TEPS)의 정답을 초소형 카메라로 찍어 문자 메시지로 전달하다 들켰고, 로스쿨생도 이렇게 하다 걸렸다. 이들은 보청기보다 작은 고막 이어폰과 손목시계형 컴퓨터까지 동원했다. 이 정도면 첩보영화다.

엊그제는 연세대 로스쿨생이 시험지를 빼내기 위해 교수의 컴퓨터를 해킹하는 사건도 터졌다. 지난 학기 만점을 받은 학생이라니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니 만점 점수도 이런 범죄의 결과였지 싶다. 제주대에서는 수의학과 학생이 교수 컴퓨터의 시험문제를 카메라로 찍는 방법으로 장학금까지 탔다고 한다. 이들이 나중에 법관이나 의사가 되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그게 더 겁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