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오바마케어'와 미국 행정의 민낯
미국 정부가 27일(현지시간) 전 국민 의무 건강보험인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와 관련해 50인 미만 중소기업 근로자의 가입 시점을 1년 연기했다. 지난 16일 일반인들에게 1년 유예조치를 취한 데 이어 또다시 한발 후퇴한 것이다. 이 모두가 오바마케어 가입 웹사이트의 접속 불량 탓이다. 이 웹사이트는 지난 10월1일 가동하자마자 먹통, 로그인 지체 등이 발생했지만 2개월이 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 아니냐”는 게 한인들의 반응이다. 야당의 사퇴압력을 받은 캐슬린 시벨리우스 보건부 장관이 자리를 지키며 웹사이트 복구를 지휘하고 있는 점도 한국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도 추락은 물론 행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더 깊어지고 있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새로운 출입국 통제시스템,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책 등에서 정부의 ‘무능’에 실망한 미국인들이 ‘오바마케어’에서 폭발하고 있다. 윌리엄 갤스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오바마케어는 정부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조그만 믿음마저 완전히 사라지게 했다”고 지적했다.

미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공무원 수는 대략 1500만명이다. 10년 전보다 40% 급증했다. 기업이 군살을 빼는 동안 정부는 조직을 키웠다. 두 개의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연방정부에 새로 취직한 직원의 절반가량이 퇴역군인이나 장애인이라고 한다. 유능한 젊은 인재들이 ‘위대한 관료’의 꿈을 꾸는 대신 월가나 실리콘밸리로 간 것은 오래전이다.

정치권은 틈만 나면 정부의 비효율을 지적하며 예산삭감을 외친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일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CNN방송의 간판 앵커인 파리다 자카리아는 최근 ‘미국인은 왜 정부를 싫어하나’라는 제목의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항공우주국 중앙은행 질병통제예방센터 국방부산하연구소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정부기관이 관리부실, 고비용, 늑장행정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오바마케어 사태’가 강 건너 불일까. 여운이 남는다.

장진모 워싱턴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