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민낯' 드러낸 가업상속세 감면제도
얼마 전 부산에서 열린 ‘가업승계, 아름다운 바통터치’ 행사 때 만난 기업인들은 “가업상속 세감면 혜택은 사전·사후 조건들이 너무 까다롭다”고 말했다. 세부 조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세감면 한도액을 아무리 늘려줘도 대다수 기업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얘기다.

취재에 나선 기자가 처음 부딪친 문제는 ‘기초 데이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예컨대 1년에 대략 몇 개 기업에서 상속·증여가 이뤄지고 있는지, 매출 2000억원 이하로 세감면 대상 기업을 제한하면 몇 개 기업이 추가로 혜택을 보는지, 공제 한도를 300억원으로 묶어두면 얼마나 세액감면이 이뤄지는지에 대한 연구조사 자료들이 없었다. 가업을 물려주는 사람과 상속받을 사람에 대한 까다롭고 복잡한 조건들이 얼마나 많은 기업에 어느 정도 불이익을 줄지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세금제도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나 징수 업무를 담당하는 국세청은 1997년 가업상속공제(1억원)제도를 도입한 뒤 16년 동안 한 번도 이 같은 통계자료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한 담당자는 “가업상속 공제제도를 본격 운영한 게 2008년부터니까 아직 몇 년 안되잖아요”라고 한가하게 답변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나 중견기업연합회 등 기업단체들도 마찬가지다. 부담을 덜어달라는 목소리만 높일 뿐, 기초 연구나 통계자료를 만들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가업상속 세감면 제도의 실효성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곳곳을 뒤져 겨우 찾은 것이 1220개 기업 가운데 46개 기업만 세감면 혜택을 받았다는 수치였다. 1220개 기업은 2011년 기준으로 매출이 1조원 이하이고, 외부감사를 받고, 경영자가 70세를 넘은 곳이었다. 중견기업연합회가 외부 전문가에 의뢰해 조사한 연구보고서 내용이었다. 하지만 중견기업연합회에서는 이 수치를 갖고 있지 않았다.

본지 13일자 A1, 3면에 ‘가업상속 감세 말뿐…요건 충족 바늘구멍’ 기사가 나갔더니 기재부와 국세청,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중앙회 등에서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기본 데이터조차 없이 16년간 가업상속 세감면 제도를 운영한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박수진 중소기업부 기자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