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자살 보험금' 눈치보는 금융당국
“사회에 미칠 파급효과나 정책적인 고민을 하기보다 국회의원들 눈치만 보는 모양새입니다.”

한 생명보험회사 임원은 사망 보험금 지급의 자살 면책기간 연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태도를 이렇게 꼬집었다. 자살 면책기간이란 보험 가입 후 일정 기간 내에 자살할 경우 사망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기간을 말한다. 보험금을 노린 자살을 막자는 취지다. 현행 생명보험 표준약관에서 자살 면책기간은 2년이다.

보험사들은 오래전부터 이 면책기간을 3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짧은 면책기간이 보험금을 노린 자살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는 주장에서다. 실제로 자살 보험금 지급액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나간 자살 보험금은 1733억원으로 2006년(562억원)의 3배가 넘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작년 7월 ‘보험사기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방향’을 발표하면서 면책기간을 연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보험금 지출을 줄여보려는 잔꾀일 뿐’이라는 일각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회 국정감사를 거치면서 정부 입장이 슬며시 바뀌고 있다. 지난달 국감장에서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자살 예방을 위해 면책기간 연장이 시급하다”며 “작년 대책 발표 이후 업무 추진이 안 되고 있다”고 금융당국을 압박했다. 반면 김영주 민주당 의원은 “면책기간은 보험사기와 연관이 없다는 연구결과가 많다”며 “유족의 생활보장만 어렵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시각차가 뚜렷하자 돌연 ‘면책기간 연장 추진’ 방침에서 ‘원점 재검토’로 한발 물러났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여야 충돌로 어느 한쪽의 의견을 수용하기 어려워졌다”며 “절충안 마련을 고민 중”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조만간 공청회를 열고 정치권 등의 입장을 반영한 수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면책기간을 2년으로 유지하되, 고액보험에 한해 특약 등을 통해 늘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한 번 정해지면 쉽게 되돌리기 힘든 금융 규제 특성상 신중한 접근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어느 제도가 옳은지에 대한 정책적인 판단이 아니라 정치 논리에 휘둘리며 허둥대는 모습은 걱정스럽다.

김은정 금융부 기자 kej@hankyung.com